앤트로픽이 서울에 사무소를 열고 한국 기업용 인공지능(AI)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대화형 AI '클로드(Claude)'를 앞세워 대기업과 개발자 생태계, 연구·공익 영역으로 협력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오픈AI 등 글로벌 AI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잇달아 파고드는 가운데, 앤트로픽은 "처음부터 안전성과 엔터프라이즈에 집중해왔다"는 점을 차별화 카드로 내세웠다.
앤트로픽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서울 오피스를 공식 개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크리스 차우리(Chris Ciauri) 앤트로픽 인터내셔널 총괄과 최기영 한국 대표가 참석해 한국 사업 전략을 설명했다.
"우린 프론티어 랩"…오픈AI와 차별화

관심은 후발주자인 앤트로픽이 한국 기업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입지를 넓힐지에 쏠렸다. 오픈AI가 국내 대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앤트로픽은 AI 안전성과 기업용 활용을 앞세웠다.
차우리 총괄은 오픈AI 등 경쟁사와의 차별화 지점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프론티어 랩으로 차별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앤트로픽은 처음부터 안전성에 집중했고, 처음부터 엔터프라이즈를 위해 모델을 개발해왔다"며 "한국에서 이미 앤트로픽의 저변이 두껍고 수용성이 높은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회사의 성장세도 강조했다. 차우리 총괄은 "4개월 전 기준 40% 점유율을 갖고 있다"며 "2025년 말 90억달러였던 연환산 매출(ARR)이 몇 주 전 470억달러로 급상승했고, 한국에서도 같은 흐름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공개(IPO)를 앞둔 앤트로픽은 최근 진행한 시리즈H 투자 라운드에서 650억달러를 유치하는 등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투자 후 기업가치는 9650억달러, 우리 돈 약 1440조원으로 평가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도 이번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다.
차우리 총괄은 앤트로픽의 출발점이 '안전성'이라는 점도 거듭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AI 안전성과 연구에 관한 회사이며, 인류가 AI 전환기를 안전하게 지나도록 한다는 미션을 가진 연구소로 출발했다"고 말했다. 앤트로픽이 공익기업(PBC)으로 설립된 만큼 모델 출시와 제품 개발 과정에서 안전성을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의 제도 환경도 앤트로픽이 주목하는 배경으로 들었다. 차우리 총괄은 "한국의 AI 기본법도 혁신을 촉진하면서 개발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위험 기반 접근을 취하고 있다"며 "철학을 공유하는 셈이고, 우리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MOU보다 실질 임팩트"…SI 협력에 방점

최기영 대표는 한국 기업 시장 공략 방식으로 시스템통합(SI)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단순한 업무협약 발표보다 실제 현장에서 성과를 내는 협력 모델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최 대표는 "어떤 업무협약(MOU)을 맺고 무엇을 발표하느냐보다 실질적인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며 "이미 LG CNS와 실질적으로 시작했고, 다른 SI와의 협력 사례도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SI들이 그동안 솔루션을 내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개발자 생산성을 높여 고객에게 결과물을 더 빨리 전달하도록 돕는 것이 SI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의 준비 상태도 자신했다. 최 대표는 "사실 앤트로픽보다 한국이 더 먼저 준비된 시장"이라며 한국의 AI 법제와 정부의 AI 3대 강국 목표, 반도체·메모리 등 하드웨어 기반, 개발자 생태계를 언급했다. 그는 "메모리부터 인프라까지 하드웨어 혁신을 한국이 주도하고 있어, AI를 풀스택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서울 오피스는 세일즈, 기술, 정책, 운영 인력을 갖춘 전담 조직으로 운영된다. 최 대표는 "기술 엔지니어부터 운영, 정책까지 아우르는 전담 조직을 한국에 구축하고 있다"며 "데이터 주권과 규정 준수도 중요한 만큼, 한국 인프라와 데이터 레지던시 옵션을 검토·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클로드의 한국어 성능에 대해서는 "이미 우수한 성능을 보이고 있고, 엔지니어링·리서치 팀과 협력해 계속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네이버·넥슨·LG·한화도 클로드 쓴다"
앤트로픽은 이날 국내 기업의 클로드 도입 현황을 공개했다. 클로드가 개인용 대화형 AI를 넘어 대기업 개발 조직과 업무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네이버는 최근 전체 엔지니어링 조직에 AI 코딩 에이전트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도입했다. 앤트로픽은 이를 아시아 최대 규모의 기업 도입 사례 중 하나로 소개했다. 최 대표는 "네이버에서 수천 명의 개발자가 클로드 코드로 개발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넥슨도 엔지니어링 조직에서 클로드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코드 작성, 검토, 배포 업무에 클로드를 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LG CNS는 수천 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클로드를 교육·적용하며 소프트웨어 개발과 고객 솔루션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향후 LG그룹 전반으로 도입을 확대할 예정이다. 삼성SDS는 삼성전자 임직원을 대상으로 클로드를 들여왔다. 한화솔루션은 AWS 베드록(AWS Bedrock)을 통해 글로벌 임직원에게 클로드를 제공하고 있다.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활용 사례가 늘고 있다. 고객상담 AI 플랫폼 채널톡을 운영하는 채널코퍼레이션은 클로드를 적용해 고객 문의 응대와 서비스·세일즈 데이터 분석을 지원하고 있다. 채널톡은 한국, 일본, 미국에서 23만여개 기업이 쓰고 있다. 로앤컴퍼니는 클로드 기반 AI 법률 비서를 개발해 법률 조사와 문서 작성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앤트로픽 경제지수(Economic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대비 클로드 사용률이 기대치의 3.5배를 넘는다. 최 대표는 한국이 1인당 사용량 기준 116개국 중 12위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코딩 같은 기술 작업과 창작 작업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며 "그만큼 실질 업무에 깊게 쓰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연구·공익 분야로도 확장
앤트로픽은 연구와 공익 영역에서도 협력을 넓힌다. KAIST, 고려대, 연세대, POSTECH가 참여하는 국가AI연구거점(NAIRL) 소속 연구자들에게 클로드를 무상 제공해 AI 안전성, 모델 평가, 정렬(alignment), 강건성(robustness) 연구를 지원한다.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에도 클로드를 제공한다. 굿네이버스는 프로그램 결과 분석, 사회복지 법령 및 내부 지침 검토, 행정 업무 효율화 등에 클로드를 도입할 예정이다.박정순 굿네이버스 경영지원본부장은 "책임 있는 AI 전환이 어떤 방식으로 현장 사회복지사의 업무를 지원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동시에 서비스 제공 역량을 강화하는 지 모색하고 있다"며 "조직 전반에 클로드를 도입함으로써 행정 업무 부담을 줄이고, 도움이 필요한 아동과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발자 커뮤니티도 한국 사업에서의 주요 축으로 꼽힌다. 앤트로픽은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클로드 포 스타트업(Claude for Startups)'을 국내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처음 선보인 개발자 커뮤니티 행사 '클로드 밋업(Claude Meetups)'에는 매회 100명 이상의 한국 개발자가 참여하고 있다.
서울 오피스 개소를 전후해 개발자 행사도 이어졌다. 앤트로픽은 지난 16일 베이스벤처스와 '클로드 빌드 데이(Claude Build Day)'를 열고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와 개발자 100여명이 제품을 직접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8일에는 레플릿(Replit), 한국투자파트너스,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와 함께 'Push to Prod 해커톤'을 공동 주최한다.
최 대표는 "국내 기업과 기관들은 혁신과 안전성을 상충하는 가치가 아닌, 함께 가야 할 목표로 인식하고 있다"며 "국내 다양한 조직들이 클로드를 활용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앤트로픽의 서울 오피스 개소는 한국의 AI 리더십을 이끄는 이들과의 협력에 장기적인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