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은 몇 도인가요?” [장헌주의 Br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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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점심시간 직후 찾은 카페, 꽤 많은 그리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그나마 조용한 자리를 찾아 랩탑 컴퓨터를 켜고 앉았는데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중년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후 그녀에게 다가온 한 남자.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랩탑을 펼쳤다. ‘랩탑(Laptop)’이란 이름 그대로 자신의 무릎 위에 컴퓨터를 얹고 그는 여성의 이야기를 열심히 받아 적었다. 딱 봐도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다. 예의 의뢰인들이 그렇듯 여성은 내일은 할 말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처럼 쉬지 않고 진술을 이어간다. 변호사의 손은 키보드를 치느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시선은 여성을 향하며 따뜻한 공감을 놓치지 않는다.




    물론 한 사람은 돈을 지불하고 전문가를 고용한 것이고, 한 사람은 돈을 받고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제3자 입장에서 중요하게 보이는 부분은 ‘공감’이다. 그것도 아주 프로페셔널하고 꽤나 온도가 높은 공감.


    사람을 기억하는 요소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투가 차지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크다. 말투는 ‘태도’의 부분이라 말투가 그 사람의 태도로 인식될 때도 많다. ‘본의’에 의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메시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수용자(Receiver) 입장에서 이해되고 분석되므로 소통으로 인한 오해를 자주 받는 경우라면, 메시지 전달자(Sender)로서 말투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에게 강렬한 말투로 남아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기자로 일하던 시절 만난 모 대기업 CEO를 빼놓을 수 없다. 홍보대행사의 끈질긴 인터뷰 제안으로 만나게 된 케이스였다. 훤칠한 외모와 세련된 패션 감각, 엣지있게 꾸며진 그의 집무실도 기억에 남아있지만, 정말 ‘강렬하게’ 남은 것은 그의 차가운 말투였다. 말에 온도가 있다면 섭씨 0도 아래로 내려가는 싸늘함이었다.

    “뭐, 대충하고 끝내시죠.”
    “사진까지 찍어야 해요? 대충하시죠?”

    물론 인류애(?)를 잔뜩 장착한 시선으로 그를 이해한다면,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의 쑥스러움과 부담감을 감추기 위해 까칠함을 빌린 말투였을 것이다. 사진촬영이 필요한 인터뷰를 진행할 때 흔히 마주하는 장면이었지만, 필자를 자극한 것은 그의 입에서 지속적으로 튀어나오는 “대충”이라는 차가운 표현이었다. 프로페셔널에게 “대충”을 강요하는 것은 상대의 일에 대한 존중 결여다.


    “인터뷰를 대충 안해봐서요…대충하기를 원하시면 이 인터뷰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진행하실지 마실지 결정해 주십시오.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순간 눈이 동그래진 그는 필자를 한참 쳐다봤다. 홍보대행사 담당 부장의 얼굴이 하얘졌음은 물론이다. 말은 그리했지만, 이미 지면을 잡아둔 인터뷰를 펑크(?)낸다는 건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서나에게도 상당한 리스크였다. 데스크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쯤 들려온 한 마디.


    “시작하시죠.”

    솔직히 까칠한 CEO를 향해 엄포(?)를 날렸지만, CEO의 집무실에 있던 모든 이의 시간은 소중하기도 했다. 인터뷰에 임하겠다는 그의 말에 필자는 집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굳어진 표정을 풀어주고 인터뷰를 이어갔고, 까칠했던 그는 대화가 계속되면서 말투도 점차 해동돼 갔다.



    “장 기자 다음주 목요일 점심에 뭐해요? 식사나 하시죠.”

    십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그가 기억되는 이유는 당혹스러운 시작과 따뜻한 마무리라는, 강렬한 반전 임팩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업무상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기억된다. 스타일, 직업, 외모, 독특한 캐릭터, 향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정함’을 담은 말투다. 다정함은 상대의 마음을 풀고 신뢰를 주는 언어적 무기가 된다.

    비즈니스 미팅에서도 사람이 떠난 뒤 상대의 말투가 남아 여운이 될 때가 있다.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을 거래처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대부분은 대화가 편했던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비즈니스에서 딜(deal)이란 것은, 서로의 조건이 맞아야 성사된다. 한쪽이 손해를 심하게 보면서 딜을 하긴 힘들다. 그런데 딜을 성사시키는 과정만큼이나 불발된 후에도 말의 온도와 농도는 미래의 거래를 위해 중요하다.

    "좋은 제안 주셨는데 지금 저희 상황에서는 조금 무리가 따르네요. 제안 감사드립니다." 라든가 "이번엔 조건이 아주 딱 맞지는 않네요. 다음에 더 좋은 기회에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정도가 그간 필자가 가진 경험으로선 선을 지키며 마무리하는 메시지들이다. “미안하다”는 직설적인 표현없이도 내 쪽의 입장을 구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선 잘 하다가 마무리할 때 아마추어 티를 팍팍 내는 사람들이 있다. 딜이 성사되지 않은 이유를 상대의 제안 내용에서 찾아 일일이 지적하는 경우, 자연스레 말투는 급랭된다. 그 회사의 이미지까지 차가운 온도로 각인된다.

    말은 단순히 성대를 통해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누군가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도, 누군가를 떠나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말은 퍼스널 브랜딩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내 말의 온도를 측정해보는 것이 내 얼굴에 맞는 컬러를 찾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퍼스널 브랜딩의 기본일 것이다.

    장헌주 님은 홈쇼핑TV 마케터로 재직 중 도미(渡美), 광고 공부를 마친 후 중앙일보(LA) 및 한국경제매거진 등에서 본캐인 기자와 부캐인 카피라이터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딜로이트 코리아에 이어 IT기업 커뮤니케이션 총괄 디렉터를 역임한 후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랩 '2kg'에서 PR & 위기관리, 브랜딩 전문가로 세상의 일에 '시선'을 더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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