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날인가요?”지난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거리를 지나던 60대 주부 박모 씨는 붉은색 아이템을 착용하고 삼삼오오 모여든 응원단을 보고서야 주변에 이렇게 물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체코에 2-1로 승리하며 16년 만에 본선 첫 경기 승리를 일궈낸 날, 적잖은 국민들은 이 경기를 통해서야 월드컵 개막 사실을 알게 됐다.
‘4강 신화’로 전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던 2002년 한일 대회 이후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는 거대한 축제였다. 팬들은 시차에 아랑곳 않고 뜨거운 응원을 보냈고, 특수를 노린 기업도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분위기를 띄웠다.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동네 마트까지 달구던 월드컵 특수가 자취를 감췄고, 대회 개막 전 대표팀 평가전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 공식 스폰서 기업 관계자가 “기획해 둔 오프라인 행사에 사람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월드컵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은 대한축구협회의 행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승부조작 연루자 사면 시도를 시작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 시비 등 헛발질이 이어졌다. 국회 청문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감사를 통해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지만 협회는 정몽규 회장의 4선 연임을 강행해 한국 축구 전체에 대한 피로감을 키웠다.
미디어 환경도 급변했다. 단독 중계권자인 JTBC가 지상파 3사에 재판매를 타진했지만 KBS 한 곳만 겨우 공동 중계에 합의했다. 월드컵 중계가 더 이상 수백억원을 투자할 정도의 매력적인 상품이 아님을 보여준 셈이다. 월드컵 전 분위기를 띄우던 특집 프로그램이 자취를 감추면서 대중들은 월드컵 개막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그래도 뚜껑이 열리자 국민들은 다시 한번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지난 12일 대한민국 대표팀과 체코의 경기는 KBS와 JTBC가 각각 8.5%, 5.7%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온라인 중계 채널인 포털 스트리밍 플랫폼에도 최고 482만명이 동시 접속했다. 협회가 유발한 피로감이 정작 선수들이 받았어야 할 관심과 응원을 가려버렸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월드컵 개막을 2주 앞둔 지난달 29일, 정 회장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늦게나마 자신의 존재가 월드컵 대표팀에 부담이 되는 상황을 끝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기 지도부는 투명한 조직 운영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국민 앞에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들이 뜨거운 응원 속에 장도에 오를 수 있고, 월드컵 역시 다시 한번 ‘전 국민의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