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한항공은 올해 4월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고유가·고환율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안전 운항과 고객 만족 기조는 유지하되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고 수익성을 높여 위기에 강한 경영 체질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항공사에서 연료비는 전체 운영 비용의 약 30%를 차지한다. 대한항공은 항공 원가 상승 속도를 늦추고 고객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제 유가와 환율 리스크를 면밀히 관리하고 있다.
우기홍 대한항공 부회장은 사내 공지를 통해 “단순한 일회성 비용 절감이 아니라 구조적 체질을 강화해 성공적인 통합을 완수하고 안정적인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각 부문 협업으로 연료 소모량 감축
중동발 여파로 국제 항공유 가격은 올해 2월 말 이후 상승세를 보였다. 항공사는 항공유를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유가와 환율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항공유 가격 상승에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 같은 양의 연료를 구매하더라도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비해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연료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안전 운항과 함께하는 고효율 연료 관리’를 목표로 현장에서 실행 가능한 연료 절감 방안을 발굴하고 이를 업무에 적용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최적 운항 속도를 비행 계획에 반영하고 관제기관과 협조해 최단 비행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항공기 중량을 관리해 탑재 연료량과 연비를 최적화하고, 엔진 세척과 정밀 조정을 통해 엔진 성능을 유지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개별 과제의 이행 현황과 연료 절감 효과를 연료관리시스템으로 분석하고 결과를 각 부문에 공유하고 있다.
연료 효율이 높은 신기재도 적극 투입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17년 이후 도입한 신형 항공기 운항 비중을 지난해 전체 운항 편수의 41.6%까지 확대했다. 올해 3월에도 보잉 787-10과 에어버스 A321네오를 각각 1대씩 도입했다. 보잉 787 시리즈와 737-8, 에어버스 A350·A321네오 등은 기존 동급 기종보다 적은 연료로 더 먼 거리를 운항할 수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모든 연료 효율화 방안은 안전 운항과 고객 서비스 향상을 전제로 한다”며 “지난해 항공기 총 운항 편수가 전년 대비 2.6% 증가했음에도 운항 중 소모 연료량은 13만3351톤 감축했다”고 설명했다.
○달러 유동성 확보·환헤지 전략
대한항공은 유가와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유류 헤지(Fuel Hedging) 전략도 활용하고 있다.
향후 사용할 연료의 일정 물량에 대해 제로 코스트 칼라(Zero-Cost Collar) 방식의 옵션 계약을 적용해 유가 변동 영향을 줄이고 있다. 이를 통해 급격한 비용 증가를 방지하고 재무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고환율에 대응하기 위한 재무 전략도 운영 중이다. 지속적인 달러 분할 매수로 환율 변동 충격을 완화하고 있으며, 전체 보유 현금의 절반가량을 달러로 유지해 유류비 증가와 유동성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수입과 지출 통화를 일치시키는 ‘내추럴 헤지(Natural Hedge)’ 전략도 활용한다. 엔화, 유로화, 위안화 등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통화를 활용한 차입을 통해 달러 부채 의존도를 낮추고 이자 비용을 줄이고 있다. 또한 통화스왑(CRS)을 활용해 환율과 금리를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전략을 통해 실질 달러 순부채 규모를 줄이고 전체 차입금 중 고정금리 비중을 약 7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미래 성장 기반 강화
대한항공은 지금까지 전 세계 항공업계에서 위기를 극복해왔다. 1970년대 후반 제2차 오일쇼크 때는 불황에 호황을 대비하는 전술로 대규모 보잉 747 점보기를 도입하고 뉴욕 노선을 취항을 감행했다. 이는 대한항공의 경영 능력과 성장 잠재력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에는 대부분 자체 소유 항공기라는 강점을 이용했다. 항공기 매각 후 재임차 등 다양한 전략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전 세계 항공업계에 직격탄을 날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대한항공은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역발상 전략으로 수익을 창출해냈다.
대한항공은 이번에도 유가 수준에 따른 단계적 대응과 전사적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여객·화물 수요 변화에 맞춰 노선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수익성을 확보하고 재무 체질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고유가·고환율 영향이 본격화하는 상황에 대비해 안정적인 항공 운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하고 있다”며 “이 같은 노력은 향후 미래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