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지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환율·물가 급등과 반도체 호황 변수가 맞물린 한국은 금리인상 가능성이 미국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7월 기준금리 인상은 물론 ‘빅스텝’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금리인상 청구서는 사회 곳곳에 날아든다. 기업에는 차환 비용으로, 가계에는 이자 부담으로, 부동산 시장에는 금융비용으로 돌아온다.
특히 미국의 금리인상은 AI 인프라 투자를 이어가는 빅테크의 조달 비용을 높이고 이는 다시 글로벌 증시 변동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7월 인상’ 선명해진 한국
장기 긴축은 아니다
장기 긴축은 아니다

자본시장의 흐름을 가장 먼저 읽는 채권 애널리스트에게 금리인상 청구서가 어디로 향할지 물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와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금리인상이 ‘장기 긴축’ 사이클은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 환율과 물가를 방어하기 위한 단기·제한적 인상일 가능성이 높고 물가가 3분기 이후 안정되면 추가 인상 압력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애널리스트는 “이번 인상은 2021~2022년식 긴축과는 결이 다르다”고 단언했다. 당시에는 팬데믹 이후의 수요 회복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發) 유가 급등이 맞물려 물가와 부동산이 동시에 과열됐지만 지금은 내수 부진과 비반도체 업종의 침체라는 하방 압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다만 환율과 물가, 성장률 추이에 따라 올해 최대 세 차례까지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그는 “한국은 반도체 호황 덕에 전 세계에서 드물게 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는 나라”라며 “7월에 환율·물가를 잡기 위해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뒤 한 차례 더 올리거나 7·8월 연속 인상 후 4분기에 한 번 더 얹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민 애널리스트는 ‘7월·10월 인상, 이후 조건부 동결’에 무게를 뒀다. 그는 “반도체 호황이 한국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내수와 고용은 약한 ‘K자형 경제’에서 추가 금리인상은 경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유가와 환율 상승으로 3%대를 찍은 물가가 3분기 이후 안정되면 추가 인상을 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금리 올려도 환율 방어 ‘글쎄’
금리인상이 환율 안정으로 이어질지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두 전문가는 금리인상이 환율 방어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는 있겠지만 최근 원화 약세의 본질은 단순한 한·미 금리차 이상으로 복잡하다고 진단했다.윤 애널리스트는 환율 불안의 핵심 원인으로 ‘수급 미스매치(불일치)’를 꼽았다. 반도체 호황으로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는 늘었지만 이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는 시점보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 자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지적이다.
윤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이 올해 국내 증시에서만 120조원 이상을 팔아치웠다”며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이 지난해 800조원대에서 현재 2300조원대로 급증한 상황에서 이들이 대거 차익실현에 나서자 달러와 원화 수급의 엇박자가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달러 유입 시차가 존재하는 것도 문제다. 윤 애널리스트는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현금은 하반기 성과급 지급이나 시설 투자 등을 위해 국내로 들어오겠지만 본격적인 유입 시점은 3분기 후반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애널리스트 역시 미국의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가 고용을 떠받치는 한 달러 우위가 쉽게 꺾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연준 발목 잡을 미국의 고차방정식
미국의 금리인상 방정식은 한국보다 더 복잡한 상황이다. 최근 고용지표 호조는 연준의 추가 긴축 명분을 키웠지만 소비와 신용시장, AI 투자 기업의 조달 비용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민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금리 경로를 ‘인상도 인하도 쉽지 않은 동결’로 봤다. 그는 “물가와 고용만 보면 미국도 인상을 해야 되는 국면이지만 연준 이사진은 아직까지 동결로 합의하는 분위기”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금리인하는 다른 이사진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윤 애널리스트 역시 미국의 추세적 금리인상 가능성을 낮게 봤다. 고용과 물가만 보면 연준이 추가 긴축에 나설 명분은 있지만 금리를 더 올릴 경우 가계 소비와 신용시장, AI 투자 기업의 조달 비용을 동시에 건드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 부담이 자산 가치를 끌어내리고 소비를 억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저금리 막차를 탄 대출자들은 2022년부터 이어진 연준의 금리인상 폭탄을 피해 갔지만 신규 대출과 차환 대출의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주택시장과 소비 여력이 동시에 압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윤 애널리스트는 “2018년까지만 해도 6% 이상 고금리 대출자 비중은 10%를 밑돌고 3% 이하 저금리 대출자가 다수를 차지했으나, 최근에는 3% 이하 대출자가 20% 미만으로 급감한 반면 6% 이상 고금리 대출자는 작년 4분기 기준 25%를 넘어서며 상황이 역전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올해 미국 경기를 볼 때 고용 숫자보다 임금 흐름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고용이 버티더라도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이 개선되지 않으면 소비는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애널리스트는 가계 소비가 위축되는 이 시점에 미국 증시를 이끌어 온 AI 빅테크들의 비용 압박까지 커지고 있어 미국이 추세적 금리인상을 이어가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애널리스트는 “최근 AI 빅테크들의 설비투자(CAPEX) 속도가 벌어들이는 돈의 속도를 추월하면서 쓸 수 있는 여윳돈(잉여현금흐름)이 급격히 줄고 있다”며 “AI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빚을 내서 투자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 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등 4대 하이퍼스케일러의 올해 합산 설비투자는 최대 70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들 기업이 벌어들이는 영업현금흐름의 무려 94%를 흡수하는 규모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합산 부채가 현금 보유액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팬데믹 직후 저금리 시절에 빌렸던 사모대출 등 대체투자 상품들의 5년 만기도 대거 돌아오고 있다. 고금리로 돈을 다시 빌려야 하는(차환)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윤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미국 경제의 핵심은 비용”이라며 “금리 인상 방정식은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주식시장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경계했다. 민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증시 변수인 ‘반도체 호황’과 ‘금리 공포’ 중 반도체의 힘이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이 계속 뒷받침되면 주식시장에서 AI에 대한 기대감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은 이미 금리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분석했다. 민 애널리스트는 “시장금리가 대부분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금리인상이 단행되더라도 채권금리가 과도하게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