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지난 3일, 서울 곳곳에서 발생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특히 투표용지가 바닥나 유권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간 투표소들이 공교롭게도 국민의힘의 대표적인 ‘보수 텃밭’이자 과거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었던 우세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 새벽까지 혼란…최고 득표율 81% 기록한 '보수 핵심'에 집중
4일 정치권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선관위가 투표용지 부족을 공식 인정한 서울 지역 투표소는 송파구 12곳, 강남구 1곳, 광진구 1곳 등 총 14곳이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자체 제보를 바탕으로 사태 발생을 주장하는 서초구와 동작구 노량진 일대까지 포함하면 논란의 지역은 더 많다.문제는 이들 지역의 정치적 성향이다. 국민의힘에서 지적한 것처럼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투표소들의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세부 득표율을 정밀 분석한 결과, 서울시 전체 평균(59.05%)을 크게 웃도는 '초강세 우세 지역'이었다.
실제 가장 먼저 용지 부족 민원이 제기되며 장시간 투표가 중단됐던 송파구 잠실2동 제6투표소의 경우, 지난 지방선거 당시 오세훈 후보의 득표율이 75.40%에 달했던 곳이다. 용지 부족 여파로 대기표를 나눠주고 무려 밤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해야 했던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역시 당시 81.08%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던 핵심 보수 성향 투표소다. 최고치를 기록한 서초구 반포4동 제3투표소(81.25%)나 강남구 청담동 제4투표소(79.48%) 등 부족 사태가 터진 대다수 투표소가 사실상 '국민의힘 표밭'이었던 셈이다.

◇ 국민의힘 "하필이면 그곳이 투표용지가 부족하냐"
국민의힘은 이 같은 공교로운 쏠림 현상을 두고 단순한 행정 착오로 보기 어렵다며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섰다.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서울 일부 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국민의힘 강세 지역에서 문제가 집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당사에서 "묘하게도 투표용지가 부족하다고 알려진 곳 14곳 중 2022년 지방선거 때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득표율이 무려 81% 넘는 곳이 있었다"며 "대부분 60% 이상인데, 기본적으로 우리 당에 대한 지지세가 상당히 강한 곳에 하필이면 그곳만 왜 투표용지가 부족하냐"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 사례까지 언급하며 선관위를 압박했다. 송 원내대표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부정선거 방식이 이런 방식이었다고 한다"며 "야당에 유리한 지역에 투표용지를 부족하게 하거나 배달시간을 늦춰가면서 실제로 기다리다 지쳐서 사람들이 투표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는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고 주장했다.
송 원내대표는 참정권 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서울 지역 개표 중단을 거듭 요구했다. 그는 "단 한 명이라도 참정권을 침해받게 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선거 정당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이고 헌법 권리가 침해된 것이어서 선거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는 사태"라고 했다.
선거 당사자인 오세훈 후보 역시 입장문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시민들의 참정권이 침해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피해 유권자들에 대한 책임 있는 선(先)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서울 지역의 개표를 유예하거나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선관위 "유권자 예측 실패 사과"…선거 효력 소송 불씨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선관위는 긴급 사과문을 발표하고 "일부 구 시·군 선관위가 예산 절감 등을 이유로 과거 투표율을 기반으로 유권자 수의 50~60% 안팎만 투표용지를 사전 인쇄해 예상보다 높은 본투표 참여율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국민의힘이 이번 투표용지 소진 사태로 인해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 유권자의 참정권 침해를 근거로 선거 효력에 대한 법적 분쟁까지 예고하면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의 정당성을 둘러싼 후폭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