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투표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게 황당합니다. 이렇게 허술해서 되겠습니까.”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가 치러진 3일 서울 당산2동 제1투표소에서 만난 여성 유권자는 한 남성이 투표용지 중복 수령 가능성에 대해 항의하는 장면을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이날 현장에선 이 남성이 투표용지 교부 절차가 허술하다고 보고 실제 중복 수령이 가능한지 확인했고, 투표용지를 한 번 더 받을 수 있는 상황까지 이어지자 현장 관계자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투표소 절차는 이랬다. 유권자는 입구에서 본인 확인을 한 뒤 바로 옆 책상에서 등재번호와 선거인 명부를 대조하고 서명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서명을 마친 유권자들이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가 투표용지 수령 줄에 서도록 안내받으면서, 본인 확인을 마친 사람과 아직 확인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동선상 섞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투표용지 수령 줄에 선 사람이 실제로 명부 대조와 서명을 마쳤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이를 통제할 인력도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한 직원은 투표용지 수령 줄에 서 있던 기자에게 “본인 확인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하지 않았더라도 “했다”고 답하면 그대로 넘어갈 수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1인 1투표제를 담보해야 할 핵심 절차가 사실상 구두 확인에 맡겨진 셈이다.
다른 곳에서도 허술한 선거 관리 사례가 목격됐다. 강동구와 서대문구에서는 선거사무원 실수로 각각 유권자에게 투표용지가 2장씩 교부되는 일이 발생했다. 서울 송파·강남구와 인천 등 최소 12곳의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선거 부실 관리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정희 전 선관위원장은 2022년 제20대 대선 사전투표 관리 부실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2025년 제21대 대선 사전투표 기간 투표용지 반출, 대리 투표 등 사례가 나오며 사과 입장문을 냈다. 이후 지난 2일 “선관위는 투·개표 전 과정을 투명하고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관리 부실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선관위는 4월 정보공개청구 답변 과정에서 조국혁신당 당원 641명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청구인에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헌법은 선관위를 헌법 기관으로 명시하고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 역할이 민주주의 체제 유지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다음 선거에서는 뼈를 깎는 쇄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부정선거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선거의 무결성은 다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사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