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이 혼잡한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도 눈에 띄게 차가 막히는 곳이 있다. 초등학교 인근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는 오후 2시30분께가 되면 자녀를 태워 가려는 차와 이를 통제하려는 경찰 및 자원봉사자가 얽혀 북새통이 펼쳐진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한국과 비슷한 풍경이 부쩍 늘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주들을 데리러 오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 각자 힘으로 가정을 꾸려갈 것이라는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먼 장면이다.브루클린에서 매일 맨해튼으로 손녀를 봐주러 온다는 제니퍼 피어몬트는 “코로나19 이후 이 같은 분위기가 더 심해졌다”며 “주택 임대료와 물가가 치솟아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기 어려워지면서 조부모가 육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출생은 미국도 피차일반
생활고에 따른 출산율 하락은 미국에서도 가시화하고 있다. 국립보건통계센터(NCHS)가 발표한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연간 출생아는 약 360만6400명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431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감소한 결과다.출산율 지표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임 여성(15~44세) 1000명당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일반출산율은 53.1명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한국 저출생 문제를 자녀 교육에 지나치게 경쟁적인 한국인 특성 때문에 생긴 결과로만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육아 비용 부담이 임계치를 넘기면 사회는 저출생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국 부모가 학원비로 등골이 휜다면 미국 부모는 각종 스포츠와 악기 교육 비용으로 가계 운영이 빠듯하다.
미국 출산율을 지탱해온 이민자 가정의 힘도 약해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불법 이민 단속을 강화하면서 이민자 유입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현금살포만으론 해결 안돼
정치권이 연일 저출생 대책을 쏟아내는 것도 한국과 닮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자녀세액공제(CTC)를 확대하고 새로운 비과세 저축 계좌를 신설하는 등 가구당 현금성 지원을 늘리며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환심을 사려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미국 부모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1년에 몇천 달러의 세금을 깎아주거나 일회성 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치솟는 주거비와 살인적인 보육비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금리가 이어지며 대출받아 집을 사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도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의 비용이 한 가계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면 해법은 단순한 ‘현금 살포’가 아니라 주거와 보육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개혁’이어야 한다. 돈 몇 푼으로 출산율 지표를 돌려세울 수 있다고 믿는 정치권의 안이한 접근이 계속되는 한 서울이든 뉴욕이든 조부모에게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일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한국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3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한국 출생아는 2024년 2분기부터 여덟 분기째 증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힘들게 끌어올린 출생아가 이후에도 증가 흐름을 이어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