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저기 사자가 뭘 먹고 있어요.”
일제히 모두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사자가 날카로운 이로 누(Wildebeest)의 머리를 물고 질질 끌면서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갈비뼈가 다 드러난 것을 보니 푸짐한 식사를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하다.
옆의 암사자는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살피고, 다른 수사자는 한가로이 낮잠을 쿨쿨 자고 있었다. 초원의 청소부, 청구서 없는 약탈자라는 별명을 가진 하이에나 무리가 어김없이 저 멀리서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해 왔다. 이 드넓은 초원에서 어떻게 그 피비린내를 맡았을까.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았던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보다니 믿기지 않는다. 맹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느껴야 할 두려움보다 경이로운 장면을 사각의 프레임 안에 포착하려는 욕심에 흥분, 또 흥분의 연속이다. 아! 그토록 오고 싶었던 탄자니아 세렝게티, 첫 극적인 순간이다.

누와 얼룩말의 위대한 공존
세렝게티는 누구나 꿈꾸는 여행지 0순위 중 하나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히는 장면이 자주 일어날 것 같지만 막상 직접 보면 평화로운 모습이다. 광활한 평원에서 동물들은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장난을 치고 먹이와 물을 찾아 이동한다. 그 중 유난히도 눈에 띄는 두 동물이 있다. 우기와 건기의 교차를 따라 물과 풀을 찾아 대이동(Great Migration)하는 ‘누’와 ‘얼룩말’이다. 외모만 보면 과격해 보이는 누와 온순해 보이는 얼룩말은 왠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다. 아프리카 초원에서는 한정된 먹이를 두고 서로 싸우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얼룩말은 키 큰 풀의 거친 윗부분을 즐겨 먹지만,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짧고 연한 풀은 뒤따르던 누 떼의 몫이다.
포식자로부터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지켜주는 방식도 독특하다. 얼룩말은 시력이 뛰어난 데다 기억력이 좋아 멀리 있는 포식자를 먼저 발견하고 이동 경로를 잘 찾는다. 반면 누는 시력은 좋지 않지만, 청각과 후각이 매우 발달해서 포식자의 냄새나 미세한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다.
즉 두 동물은 자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대방의 강점을 받아들임으로써 포식자로부터 생존의 방어막을 견고하게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강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자 행동이다. 각자 자신의 장점만으로 홀로서기하려 했다면 과연 포식자의 위험을 벗어나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흔히 이런 모습을 ‘공존’이라 부른다.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이라는 의미다. 위대한 공존의 지혜를 두 동물로부터 배운다. 두 동물은 친한 이웃, 친구, 대이동이라는 여행 파트너, 나아가서는 삶의 동반자다.

작은 관심과 행동,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 공존의 현장에서 문득 사람 사는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공존과 유사해 보이지만, 요즘 ‘상생’이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상생은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간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공존보다 더 능동적이고 어떤 애쓴 노력으로 다 함께 잘 산다는 의미가 내포된 듯하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공존을 넘어 상생하며 살 수 있을까? 상생의 삶을 산다는 것은 더욱 어렵고 거창해 보인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솔직히 막막하기만 하다.최근 동호회원들과 함께 사진 재능 기부 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서울의 한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서 생활인들의 증명사진과 단체 사진을 찍어 주기 위해서다. 최대한 웃는 표정을 포착하려 안간힘을 쓰는 사진 촬영 작가, 환한 미소를 짓게 하려고 목청껏 외치는 촬영 진행 보조, 보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위한 보정 작업까지.
봉사 도중 한 정신 장애인은 “삼촌이 사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며 자꾸 말을 걸고 싶어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려 애를 썼다. 봉사가 끝날 무렵 한 복지사는 “요양 시설을 도우려면 상당 금액 기부 같은 경제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말동무가 되어 주는 봉사를 해 주실 분도 절실하게 필요해요. 하지만 정신 질환자라는 인식 때문에 꺼려서 지원자가 많지 않아 안타까워요. 관심이 곧 회복입니다.” 마지막 그녀의 말이 큰 울림을 줬다.
즐겁고 재밌는 활동 중심의 동호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게나마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나눔 봉사였다. 마침내 완성된 사진 액자를 보내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순간, 상생으로 향하는 작은 발걸음을 내디딘 듯한 보람을 느꼈다. 그늘진 표정의 그분들이 액자를 통해 일상에서 좀 더 웃을 수 있지 않을까.

‘홀로서기’를 뛰어넘어 ‘함께 서기’로
우리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 세상과 마주하고 배우고 실천한다. 세렝게티에서 본 것은 단순한 동물의 왕국이 아니었다. 서로의 약점을 기꺼이 내어주고, 강점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공동체였다. 세렝게티의 초원보다 더 냉혹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해야 하는 우리에게 농사꾼이자 글쟁이 전우익 작가는 저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에서 이런 말을 전한다.<i>“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 껴.”</i>
혼자만 잘사는 대신, 주변을 두루 살피며 나누는 삶을 어떻게 추구할 수 있을까. 세렝게티의 두 동물처럼 자신의 결핍을 상대방의 강점으로 채움으로써 공존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나눔 봉사를 실천하면서 상생할 수도 있다. 상대방을 바라보며 ‘함께 서기’라는 길에 동행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지금 보다 훨씬 아름다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