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기판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AI용 반도체기판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실적도 상승세다. 업계에선 두 회사 모두 올해 연간 영업이익 ‘1조 클럽’에 복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가도 급등하고 있다. ◇ ‘효자 부품’ 된 반도체 기판
반도체 기판 시장에서 ‘효자 부품’으로 거듭난 대표적인 제품은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다.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불리는 FC-BGA는 기존 기판보다 신호 손실을 줄이면서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개인용 컴퓨터(PC)에 주로 쓰이던 FC-BGA는 AI 서버 및 가속기 시장이 확대되면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업계의 ‘큰 손’인 엔비디아와 AMD를 포함해 구글과 브로드컴, 아마존 등의 빅테크도 자체 AI 반도체를 만드는 글로벌 빅테크들도 구매를 원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로 인해 FC-BGA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서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주목받고 있다.

두 회사는 모두 2022년 FC-BGA 양산에 성공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기는 국내 최초로 서버용 FC-BGA을 양산해 엔비디아와 AMD, 구글 등 빅테크에 제품을 공급했다. 추가 물량에 대비하기 위해 최근 베트남에 12억 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FC-BGA 공장을 새로 지었다. LG이노텍도 2년 만에 글로벌 빅테크에 PC용 FC-BGA를 납품하는 쾌거를 이뤘다.
생산 라인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삼성전기의 올 1분기 반도체 기판 생산라인 평균 가동률은 86%다. 최저치를 찍은 2023년(58%) 이후 수요가 늘어나면서 해마다 가동률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LG이노텍의 반도체 제조 설비 가동률은 같은 기간 63.2%에서 91.8%로 뛰었다.
실적도 뛰고 있다. 삼성전기의 반도체 기판 사업을 총괄하는 패키지솔루션사업부의 올 1분기 매출은 7250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45.2%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72억원에서 553억원으로 증가하며 두 배 이상 뛰었다. LG이노텍 패키지솔루션사업부의 1분기 매출도 43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늘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한 377억원에 달했다. 모든 사업부를 통틀어 패키지사업부의 수익성이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전망도 장밋빛이다. 마켓리서치인텔렉트에 따르면 전세계 FC-BGA 시장은 2024년 109억달러(약 15조원)에서 2031년 241억달러(약 35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 4년 만에 ‘1조 클럽’ 달성하나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AI 반도체 기판 외 다른 사업들도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고 있다. 삼성전기의 또다른 신성장 동력은 산업용·전장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다. MLCC는 초소형 축전기(커패시터)로 전류의 흐름을 조절하는 핵심 부품이다. 과거 삼성전기는 MLCC 대부분을 스마트폰에 공급했으나, 최근 AI 서버가 효자 사업으로 급부상했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MLCC는 2만5000여 개로, 일반 서버(2000여 개)보다 12배 이상 많아서다.삼성전기는 AI 서버용 MLCC 시장에서 지난해 40%에 이르는 점유율을 확보해 일본 무라타와 1~2위를 다퉜다. 올초 고성능 MLCC를 미국 우주항공 기업에 납품하는 성과를 냈다. 기존보다 용량이 2배 높은 MLCC 신제품을 출시하고 고객사와 장기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일 글로벌 대형 기업과 1조 5570억원 규모의 실리콘 커패시터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차세대 제품 양산에도 앞장서고 있다.
LG이노텍은 ‘코퍼 포스트(Cu-Post)’ 같은 신기술을 개발하며 스마트폰용 반도체 기판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 기술을 쓰면 반도체 기판 성능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크기를 20%가량 줄일 수 있다. 애플이 지난해 9월 출시한 5.6㎜ 두께 초슬림폰 ‘아이폰 에어’에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6일에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리는 ‘2026 전자부품기술학회(ECTC)’에 사상 최초로 참가해 차세대 반도체 기판 기술을 선보였다. 칩을 기판 위에 실장하는 기존 공법과 달리 기판 내부에 칩을 매립하는 기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실적에 힘입어 주가도 급등하고 있다. 29일 종가 기준 삼성전기 주가는 212만 7000원으로 연초(1월 2일) 27만원 대비 여덟 배 가까이 올랐다. LG이노텍은 같은 기간 26만7500원에서 145만 8000원으로 약 여섯 배로 뛰었다. 이달 들어 두 회사의 주가는 각각 유가증권시장 월간 상승률 4위, 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두 회사가 4년 만에 영업이익 1조 클럽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픽AI의 컨센서스에 따르면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올해 영업이익은 각각 1조6106억원, 1조762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FC-BGA 등 반도체 기판 수요가 폭증하면서 공급사들이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며 “향후에도 ‘공급자 중심’ 시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도체 '유리 기판'도 뜨겁다…삼성·LG·SK, 시장 선점 경쟁
전자부품 업체들이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꼽히는 ‘유리 기판’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플라스틱 기판 대신 유리기판을 쓰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일 뿐 아니라 전력 효율을 30% 개선할 수 있다. 정보 처리량이 많은 인공지능(AI) 시대의 필수품으로 꼽힌다.삼성전자는 최근 투자 전문 삼성 계열사인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국내 첨단 반도체 소재 기업 JWMT(옛 중우엠텍)에 투자해 일부 지분을 확보했다. 2002년 설립된 JWMT는 유리기판 제조 분야 강자로 꼽힌다. 2002년 설립된 JWMT는 유리기판 제조 분야 강자로 꼽힌다. JWMT는 유리에 직접 구멍을 뚫는 대신 레이저로 유리의 물성만 바꾼 뒤 화학 약품으로 녹여내는 기술인 ‘LMCE’를 확보했다. 삼성전기는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유리기판을 개발하고 있다. 세종 사업장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해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협업해 유리기판의 핵심 소재인 글라스 코어 제조 합작법인(JV) 설립도 추진 중이다.
LG이노텍도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문혁수 LG이노텍 사장은 ‘CES 2026’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판 기술인 유리기판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며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손잡고 2028년 시제품 양산을 목표로 개발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앞서 LG이노텍은 2024년 유리기판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고,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 R&D 조직에서 개발을 한창 진행 중이다. 이미 시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도 R&D 센터 내에 구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SKC의 자회사 앱솔릭스도 유리기판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공장에서 미국 AMD에 납품할 제품의 품질 테스트를 하고 있다. 앱솔릭스는 미국 생산 라인을 기반으로 연말까지 글로벌 고객사의 신뢰성 테스트를 마칠 계획이다. 최근 유상증자로 확보한 대금 8281억원 중 약 6000억원을 유리기판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인텔 출신 강지호 SK하이닉스 부사장이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강 대표는 인텔에서 15년간 반도체 산업 관련 기술·운영 경험을 쌓고 이후 SK하이닉스에서 C&C(클리닝&CMP 공정) 기술을 담당했다.
이외에 일본 이비덴과 DNP 등도 유리기판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TBRC에 따르면 글로벌 유리기판 시장은 연간 6.6%씩 성장해 2024년 79억달러에서 2029년 108억5000만달러 규모로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은 AI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