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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으로 믿은 암소가 임신해버렸을 때, 계약은 어떻게 될까 [조대환의 영미계약법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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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으로 믿은 암소가 임신해버렸을 때, 계약은 어떻게 될까 [조대환의 영미계약법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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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암소 한 마리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미국 미시간에서 농부 Sherwood가 Walker로부터 암소 한 마리를 사기로 했다. 당시 당사자들은 그 소가 불임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암소의 가격을 임신할 수 있는 일반 암소의 통상적 가치에 비해 훨씬 낮은 80달러로 정했다.


    그러나 출고를 앞두고 그 소가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자, Walker는 계약 이행을 거절했고, Sherwood는 이미 합의는 성립했으므로 뒤늦게 밝혀진 임신 사실만으로 계약이 소급해 무너질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Sherwood의 입장에서는 매매계약이 이미 성립했고, 계약의 대상은 분명히 그 개체 자체였으며, 나중에 그 소가 임신 상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서 이미 완성된 합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장했다. 계약은 당시의 인식과 합의에 따라 판단해야지, 사후에 밝혀진 사정으로 손쉽게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Walker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보았다. 자신이 팔기로 한 것은 임신한 번식용 소가 아니라 불임이라고 믿었던 식용우에 가까운 소였고, Sherwood 역시 같은 전제를 공유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 거래는 서로 다른 대상을 두고 이뤄진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즉 이는 단순한 가격 협상의 실패가 아니라, 거래의 기초가 되는 사실 자체에 대한 당사자 쌍방의 착오라는 논리였다.

    결국 이 사건은 당사자들이 인식한 계약대상물인 해당 암소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전제가 무너졌을 때 계약도 함께 무너질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다.

    법원은 양 당사자가 그 암소가 번식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 인식해 계약한 것이므로, 암소가 사실상 번식을 할 수 있다면 매도인 Walker의 착오로 인한 계약 취소권(entitled to avoid)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이는 당사자의 착오가 계약 대상물의 본질 자체(very nature)에 관한 것이고, 불임인 암소는 번식할 수 있는 암소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을 근거로 했다(Sherwood v. Walker, 33N.W. 919, 924 (Mich. 1887)).
    무엇이 착오인가 ? 단순한 오판과 본질적 오인의 경계

    이 판례가 오늘날까지도 계약법의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착오를 어디까지 법이 구제할 것인지라는 문제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법은 모든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무너뜨리게 두지는 않는다. 단순히 거래 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언제든 계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면 계약의 안정성은 유지될 수 없다.

    반대로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본 전제를 공유했다고 믿으며 거래했는데 그 전제가 사실과 달라 계약의 본질 자체가 달라진 경우까지 끝까지 계약을 강행하게 한다면 그것 역시 공평하지 않다.


    이에 영미계약법에서는 착오가 계약의 중요한 기초 사실에 관한 것인지와 그 위험을 누가 부담하기로 했는지에 관한 사항을 함께 고려한다.

    Sherwood v. Walker 사건의 핵심은 "무엇을 팔기로 했는지" 였다. 불임의 식용우와 번식할 수 있는 암소는 외형은 같아도 경제적 의미와 거래 가치가 전혀 다르다.



    법원은 당사자들이 그 소를 불임이라고 믿은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했고, 그 전제가 계약의 본질적 기초를 이뤘다면, 그 착오는 단순한 계산 실수가 아니라 법적으로 중요한 착오라고 보아 매도인 Walker가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계약은 언제 취소되는가 ? 당사자 쌍방 착오와 위험부담의 기준

    이 판례는 계약당사자의 착오가 어떠한 경우에 취소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당사자에게 공통된 기초 사실에 관한 착오, 즉 계약의 기본적 전제에 관한 착오가 있어야 하고, 그 착오가 교환의 본질에 중대한 영향을 주어야 하며, 더 나아가 그 위험을 해당 당사자가 부담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구조는 후대 영미 계약법을 집대성한 Restatement Second of Contracts §152로 정교화되었다.

    착오는 당사자가 합의한 상호 간 이행(agreed exchange of performances)을 하는데 중대한 영향(material effect)을 미쳐야 하는데, 이는 착오가 없었더라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정도의 입증이 필요하다.

    특히 당사자들이 계약목적물(subject matter)의 가치(value)에 관한 착오가 있는 때 문제 되는데, 이는 대체로 그 착오가 계약대상물(subject matter)의 본질(nature), 동일성(identity)이나 존재(existence)와 연관된 경우에 계약의 취소(avoidance)가 인정될 수 있다.

    우리 민법 제109조도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해,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경우 취소를 인정하면서도,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에서 비롯된 경우에는 취소를 제한한다.

    결국 양쪽 법제 모두 착오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구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착오가 계약의 핵심을 건드릴 정도로 본질적이라면 법이 개입할 여지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Sherwood v. Walker 사건은 우리 민법이 말하는 "중요 부분의 착오"를 설명하는 사례로도 인용될 수 있어, 오늘날 이 판례의 의미는 더욱 커졌다.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고전, 계약법의 경계선

    Sherwood v. Walker는 법 실무에도 충분히 시사적이다. 예컨대 거래 당사자들이 어떤 대상의 가치, 상태, 용도에 관하여 공통된 전제를 두고 계약했는데 그 전제가 사실과 다르다면, 이는 단순히 계약 내용을 잘못 인식한 데 대해 후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검토할 만한 착오가 된다.

    특히 금융, 부동산, 투자계약, 후원 계약처럼 대상의 본질이나 목적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착오의 존재 여부와 그 중요성, 그리고 위험부담의 귀속이 분쟁의 핵심이 된다.

    오늘날 거래는 더욱더 복잡해졌고, 당사 간의 정보 비대칭은 심해졌으며, 인공지능과 데이터 분석까지 동원되는 현대 계약에서는 당사자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몰랐는지, 그리고 그 모름이 누구의 책임인지가 더 자주 문제 된다.

    암소 한 마리의 이야기가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결국 계약이란 숫자만의 합의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공동의 믿음 위에 세워진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Sherwood v. Walker는 단지 한 세기 전의 고전적 법리가 아니라, 계약의 자유가 어디까지인지와 계약책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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