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에너지 시장을 놓고 벌어진 갈등 구조는 중층적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EU 내부 간 다툼은 에너지 분쟁을 넘어 외교·안보·경제가 뒤섞인 지정학적 패권 경쟁 성격이 짙었다. 러시아 에너지의 유럽 공급망을 끊어내려는 미국의 압박은 거셌다. 러시아는 미국 제재에 자원 무기화 전략으로 맞섰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의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으나 비용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크라 전쟁 전 유럽의 러시아 가스의존도 45%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 EU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45%에 달했다. 2020년 기준 핀란드 94%, 스웨덴 70%, 독일 49%, 이탈리아 46%, 폴란드 40% 등이었다.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스관은 우크라이나 노선, 북해 쪽 노르트스트림 1·2, 튀르크스트림, 야말 노선 등이다. 우크라이나 노선은 소련 시절부터 운영해 온 전통 가스관이다. 우크라이나는 통행료로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우크라이나에 반러시아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 가스 노선을 두고 분쟁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이후 친서방 성향이 짙어지자 러시아는 2006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가스값을 크게 올리려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거부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공급 가스관을 잠갔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노르트스트림, 야말 등 우크라이나 우회 노선을 추진하게 된다. 이 분쟁과 관련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품안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에너지를 무기로 휘둘렀다”는 분석이 나왔다(에밀리 오브리, 프랭크 테타르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2009년엔 더 큰 싸움이 일어났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율리야 티모센코 정부는 러시아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가스 대금 체납 이유로 다른 유럽 국가로 보내는 가스 공급까지 줄이거나 중단했다. 불가리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헝가리 등 동유럽과 발칸 지역에서 공장 가동을 대거 중단했고 난방 부족으로 혹한에 떨어야 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점령 이후 우크라이나에 할인 가격을 철회하고 재개했던 공급을 다시 끊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가스를 역방향으로 보냈다. 이런 잇단 분쟁에도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소홀히 했고 외교적 해법에만 기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19년 12월 가스관 5년 사용 계약을 했고 전쟁 이후에도 지켜졌다. 그러나 2025년 우크라이나가 계약 갱신을 거절하면서 가스 공급은 전면 중단됐다. 러시아의 수입을 줄여 전쟁 수행에 타격을 주려는 게 우크라이나의 의도였다. 이 가스관 폐쇄로 러시아의 연간 천연가스 판매 수익은 65억달러 줄었다.
러시아와 독일이 우크라이나 우회 노선을 추진해 2011년 개통한 것이 노르트스트림1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다. 러시아 북서부 비보르크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을 잇는 것으로 길이는 약 1224km다. 200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가 계약에 서명했다. 그는 총리 퇴임 이후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이사와 감독위원회 이사장직을 각각 맡으면서 거센 논란을 불렀다. 슈뢰더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소속 정당인 사민당의 탈당 압력까지 받았다. 최근 EU가 푸틴 대통령과 대화 채널을 열려고 시도하면서 중재자를 물색하자 푸틴은 ‘오랜 친구’라며 슈뢰더를 적임자로 콕 집었다. 그러나 EU와 우크라이나는 즉각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제재가 시작되자 러시아는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을 줄이기 시작했고 2022년 8월 완전 차단했다. 가스를 보복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발트해에서 노르트스트림1과 나란히 건설된 노르트스트림2는 2021년 완공됐다. 러시아의 가스프롬은 유럽 가스 수요 증가로 노르트스트림1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건설 이유로 들었다. 실제론 우크라이나를 가스 공급 라인에서 완전 배제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2018년 착공 이후 미국은 거세게 반대했다. 미국 의회는 건설에 참여한 기업과 선박을 직접 겨냥, 국방수권법에 제재 조항을 넣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노르트스트림2는 더 이상 경제 문제가 아니라며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라고 비판했다(헬렌 톰슨 ‘질서 없음’). 미국 내에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판을 깔아줬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는 그렇지 않아도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집단방어에 돈을 쓰지 않고 미국에 의존한다고 불만을 가진 터였다(하이케 부흐터 ‘석유전쟁’). 그러면서 유럽에 미국의 가스 구매를 촉구했다. 이를 위해 유럽에 ‘이익보호국’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건설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르트스트림2, 완공해 놓고 가동 시작 못해
노르트스트림2 건설은 유럽을 갈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에너지는 안보가 아닌 경제 문제라며 저렴한 가스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를 우려한 폴란드와 발트 3국, 스웨덴, 우크라이나 등의 반대는 거셌다. 논란 끝에 독일은 2021년 11월 러시아의 가스프롬이 생산도 하고 파이프라인도 소유함으로써 생산자와 수송자를 분리하는 EU 규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노르트스트림2 인증을 보류했다. 실제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보류 원인이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 전 인증 절차의 영구 중단을 선언하면서 110억유로(약 19조2000억원)를 들인 노르트스트림2는 완공된 상태에서 사용 불능이 됐다. 이런 가운데 노르트스트림1, 2 폭파 사건이 2022년 9월 발생했다. 1, 2 파이프 4개 관 중 3개가 파괴됐다. 러시아, 미국, 우크라이나 등이 용의 선상에 올랐지만 미궁에 빠져 있다.
러시아는 흑해를 거쳐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등으로 연결하는 사우스스트림 가스관 건설도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 심화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결속 약화를 초래한다며 참여 반대를 압박했고 불가리아는 공사를 중단했다. EU도 ‘생산자와 수송자 분리 원칙’ 위배를 이유로 반대했다. 푸틴은 2014년 12월 프로젝트를 전격 취소했고 튀르크스트림으로 전환했다. 흑해를 통과하는 1노선은 튀르키예 국내용이고 2노선은 튀르키예에서 불가리아, 세르비아를 잇는다. 튀르크스트림은 현재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유일한 노선이다. EU는 제재하려 했지만 튀르키예가 EU 비회원국이어서 역외 우회를 막을 명분이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탈(脫)러시아가 본격화됐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는 대폭 낮아졌다. 가스는 침공 전 45%에서 2025년 약 12%로, 석유는 27%에서 1%대로 줄었다. 유럽은 러시아산 대신 대거 미국산으로 전환했다. 미국산은 2025년 1분기 기준 EU의 가스 수입의 24%를 차지했다. 노르웨이에 이어 2위다. 유럽은 ‘REPowerEU 계획’을 통해 재생에너지 비중도 확대, 2027년까지 러시아 에너지 의존 종식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막대한 전환 비용과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⑥회에 계속)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