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파키스탄과 카타르가 막판 중재에 나섰다. 이란은 미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면서도 외교적 접촉을 이어가고 있지만,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중동 긴장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이란 국영 IRNA 통신 등에 따르면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군 총사령관은 이날 테헤란에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이틀째 회동한 뒤 이란을 떠났다. 양측은 전날 밤늦게까지 이어진 회담에서도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더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외교적 해법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니르 총사령관은 아라그치 장관뿐 아니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 등과도 잇달아 만났다. 갈리바프 의장은 미국과의 종전 협상 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파키스탄·카타르 막판 중재
파키스탄은 이번 국면에서 중재국 역할을 하고 있다. 무니르 총사령관은 지난달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을 성사시킨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인사로 전해져 이번 테헤란 방문이 교착 상태를 풀 계기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갈리바프 의장은 무니르 총사령관에게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국가와 민족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정직하지 않고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군이 평화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면서도 "조국의 존엄과 권리가 짓밟히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우리 군은 휴전 기간 전력을 재정비했고, 트럼프가 어리석게 전쟁을 다시 시작한다면 미국은 전쟁 첫날보다 훨씬 더 참혹하고 쓰라린 결과를 마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타르도 중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카타르 외무부에 따르면 셰이크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 겸 외무장관은 아라그치 장관과 통화하고 "위기 종식을 위한 포괄적 합의 도출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총리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항행의 자유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근본 원칙이며,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거나 압박 전술로 사용하는 것은 위기를 심화시키고 역내 국가의 핵심 이익을 위협할 뿐"이라고 했다.
카타르 측은 무함마드 총리가 이집트의 바드르 압델라티 외무장관과도 통화하고 미국·이란 분쟁 해결을 위한 파키스탄의 중재 역할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에미르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공습 재개 카드 만지작
미국 쪽 움직임도 긴박하다. 앞서 미국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와 CBS 뉴스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미국 측 '최종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공습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20일 이란에 제안을 전달했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군사 공격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 고위 관계자 회의를 연 뒤 연휴 개인 일정도 취소했다. 당초 뉴욕 연설을 마친 뒤 뉴저지 골프장에서 머물 예정이었지만 백악관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결혼 행사 참석도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정부와 관련된 상황, 그리고 미합중국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에 주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 중요한 시기에 워싱턴 D.C.의 백악관에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군과 정보 당국도 대기 태세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메모리얼 데이 연휴를 앞두고 있지만, 중동 지역 주둔 병력 교대와 이란의 보복 가능성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4월 8일부터 임시 휴전에 들어간 상태다. 양측은 합의 도출을 위한 간접 회담 시간을 벌기 위해 서로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협상이 지연되면서 공습 재개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는 분위기다.
한때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을 통해 미국과 이란 간 합의문 초안이 마련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이란은 현재로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란 측은 논쟁적 쟁점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는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이란은 합의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