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과 사랑,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모든 순간에 내 안의 세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성, 감성은 물론이고 배고픔과 응큼함, 욕, 자존심, 원칙, 불안, 패션까지 관장하는 여러 세포가 '나'라는 존재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거나 치열하게 토론한다. 웹툰 원작의 티빙 오리지널 '유미의 세포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유미의 세포들'은 총 3개 시즌을 거쳐 이달 서사를 최종 마무리했다. 시즌3은 공개 첫 주부터 마지막 주까지 전 주차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를 기록했고, 시즌1 대비 226% 성장하며 전체 시즌 중 최고 성과를 달성했다. 2021년 시작됐던 유미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었던 여정의 끝. 구웅, 유바비 등의 연인을 지나 '연하남' 순록에게 정착한 해피엔딩에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지며 "가장 성공적인 시즌제 작품"으로 기록됐다.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세포들이다. 다양한 세포들이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서사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실제 배우들의 연기 사이사이에 들어간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그 세포들의 입이 되어준 성우들은 이 작품의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이번 시즌을 빛낸 순록의 세포들, 그리고 5년간 성장통을 함께 겪은 유미의 세포들을 만나봤다.


2021년 시즌1을 시작했던 '유미의 세포들'의 마지막 장면은 5년 동안 유미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제대로 자극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미 주변으로 모든 세포가 모인 신부 대기실. 오롯이 '나'를 위해 매 순간을 불태웠던 세포들의 노고(?)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유쾌했던 이 작품은 불쑥불쑥 진한 '자기애'를 건네 시청자들을 감동케 했는데, 결혼식 장면은 그 순간들을 한데 모아 가장 진한 농도로 압축한 느낌이었다.
유미의 인생 숙원과도 같았던 사랑의 결실을 본 마지막 장.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티빙 사옥에서 사랑세포를 연기한 안소이 성우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소이 성우는 "시즌1부터 유미랑 같이 성장한 세포가 바로 나"라면서 "사랑세포가 유독 많이 성장했다. 함께 웃고, 울고, 화내는 등 감정의 파고가 컸기 때문에 애정이 남다르다. 유미가 어른으로서 성장하고, 모든 걸 밸런스 있게 쥐면서 용기 있게 나아가는 걸 보면서 뿌듯했다. 나 역시 동화 같은 마음으로 행복하게 마무리했다"며 미소 지었다.
신부 대기실 장면을 떠올리면서는 "우리가 한 팀으로서 유미의 행복을 위해 5년을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끝났네?'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정말 한 팀이었다'는 느낌에 울컥했다"고 전했다.
특히 사랑세포는 주인공인 유미의 서사를 이루는 핵심 세포로, 안소이 성우는 실제 배우인 김고은과의 감정선을 맞추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고 했다. 당초 행복하고 기쁜, 사랑에 매진하는 밝은 느낌의 사랑세포를 구축해 갔지만, 연출·작가로부터 "리더 같은 묵직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받아 톤을 수정하니 마침내 실사랑 애니를 연결 지어주는 징검다리가 됐다고 한다.
안소이 성우는 "애니 연기가 실사와 붙었을 때 튀면 안 됐다. 중간에서 잘 버무려야 한다는 점을 신경 썼더니, 거기에서 캐릭터의 매력이 드러나더라. 본질이 뚜렷한 다른 캐릭터에 비해 사랑세포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이었다.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시즌3은 고민이 컸다고. 그는 "이전 시즌에서는 감정을 확 발산하면 됐는데, 이번에는 내면의 미묘한 고민과 혼란, 계속 숙고하는 모습들이 있었다. 그걸 은근하게 보여줘야 했다. 대사는 줄었는데 표현은 정확해야 해서 더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세 번의 시즌을 해온 만큼 스쳐 지나가는 추억도 많았다. 먼저 첫 대본 리딩 때를 떠올리며 안소이 성우는 "원래 성우는 바로 녹음실에 가서 녹음하기 때문에 리딩이 처음이었다. 각자 자기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연출·작가님이 너무 좋아하고 신기해하더라. 그 모습에 고무됐다. 우리 목소리가 대중들에게 재밌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시즌2에서 사랑세포가 흑화했던 순간을 꼽았다. 당시 사랑세포는 유미의 이별에 분노하며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이후 유미가 마을을 직접 찾아와 "너 애쓴 거 알아"라며 위로해 시청자들을 눈물짓게 했다. 안소이 성우는 "그게 결국 나 자신을 위로하는 장면이지 않나. 애쓰고 힘들었던 걸 스스로 다독이는 장면이다. 공감 가는 부분이었다. 가장 신경 쓴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나를 다독이고 위로할 때 사람은 어떻게 울지 생각해 봤다. 어린아이처럼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태껏 어른스럽고 묵직했던 사랑세포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는데, 다행히 시청자분들이 위로받고, 치유됐다고 하더라. 나 자신을 응원한다는 게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이지 않나. 기념비적인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인터뷰 도중 안소이 성우는 '유미의 세포들2' 작업을 하며 갑상선암 수술을 했던 사실을 깜짝 고백했다. 수술을 마치고 해당 장면의 수정 녹음에 돌입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본 녹음을 하고 수정 녹음을 하는 사이에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사랑세포가 흑화하는 장면을 수술한 뒤에 소화한 거였다. 초기였고 수술도 잘 됐지만, 티가 나면 어떡할까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 다들 괜찮다고 해주셔서 오히려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며 밝게 웃었다. 현재는 건강을 회복한 상태라고 했다.
안소이 성우는 '유미의 세포들'을 "힐링 드라마", "귀하디귀한 로맨스"라고 표현하며 애정을 표했다. 원작 팬이기도 했다는 그는 "아픈 손가락은 구웅이지만, 난 원래도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은 순록이었다"면서 배우 김재원이 안경을 벗고 작업실로 들어오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설렜다고도 털어놨다.
끝으로 사랑세포로서 유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사랑세포가 이성과의 사랑만 관장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유미의 삶에서 소중하고 행복한 사람이 늘어날 거다. 점점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 거고, 사랑세포가 관장하는 부분도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서 같이 행복하자!"라고 답했다.

안소이 성우가 설렘 가득한 장면에 기여했다면, 시청자들의 속을 뻥 뚫어주고 웃음을 유발하는 데에는 이슬 성우가 힘을 쏟았다. 이슬 성우는 유미의 작가·욕·자존심·집안일 세포·쿵심이 등을 맡아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이슬 성우는 서면으로 "오랜 시간 함께했던 유미 및 세포들과 안녕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시즌2를 마무리하면서 시즌3을 제작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시즌2가 끝난 후로 꽤 시간이 흘러서 시즌3은 정말 안 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시즌3을 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반갑고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인다역을 맡다 보니 그에 따른 걱정도 있었다고. 이슬 성우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맡아야 할 세포들이 조금씩 늘어나다 보니 비슷하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각 세포의 특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작가세포는 소리 자체는 약간 중성적인 느낌으로 잡았다. 뒤로 갈수록 작가세포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감정들을 잘 표현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욕세포는 욕이 숨 쉬듯 나오는 느낌으로 하려고 했다. 욕세포가 웃고 있어서 저도 웃으면서 했다"고 했고, "자존심세포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강하게 표현한 부분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욕세포의 부활은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깜찍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내뱉는 욕에 절로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다. 이슬 성우는 "많이 웃어주시고 시원하다고 해주셔서 기뻤다. 욕 잘한다고 해주신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면서 "시즌3 초반부터 욕세포가 나와서 저번보다 별로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시즌2 녹음 때는 어느 정도 가이드가 있었다. 즉흥적으로 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라 준비를 해갔는데, 시즌3 대본은 욕하는 부분들이 'XX'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했고, 욕을 다양하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조금 과하게 준비를 해가서 녹음 때 욕을 약간 줄이게 됐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이슬 성우는 세포들이 유미를 지키려는 장면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유미의 세포들'을 보면서 내게도 세포들이 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세포들을 녹음하다 보니 세포들이 유미를 위해서 참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면서 "유미와 세포들의 모습을 보면서 유미의 삶도 응원하게 되지만, 더불어 그걸 보고 있는 '나'도 응원하고 나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게 '유미의 세포들'이 주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슬 성우는 "오리지널이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그걸 보고 즐거워해 주셔서 더욱더 기뻤다.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면서 "가끔 주변에서 '잘 봤다'고 좋은 말씀을 해줘서 깨달음을 얻고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보고 들으시는 분들이 공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성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