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이 진짜 사용자"라면서 단체교섭을 요구한 사건과 관련해 노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HD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없다는 판단이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전 법을 근거로 내놓은 판단이지만 CJ대한통운·현대제철·한화오션과 같은 개별 기업뿐 아니라 백화점·면세점 업계 등의 원·하청 교섭 분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개정 이전 노동조합법을 기준으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을 근거 삼아 내놓은 판단은 아니다. 기존 법리를 토대로 볼 때 HD현대중공업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회사는 약 7년6개월 만에 소송 리스크를 덜게 됐다.
대법원은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이번 사건에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경우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맺은 자'란 기존 법리가 여전히 타당하다고 봤다.
이번 사건은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근로자들로 조직된 금속노조가 원청인 HD현대중공업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하청 노조는 HD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기본적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서 원청도 교섭 상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 근로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임금과 인사, 취업규칙 등은 각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운영해온 만큼 원청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1심은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려면 원청과 하청 근로자 사이에 적어도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다고 볼 정도의 사용종속관계가 필요하다고 봤다. 단체교섭 제도는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계약의 내용을 집단적으로 형성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기능과 가능성을 본질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사내하청업체들이 별도 급여체계를 갖추고 독자적인 취업규칙과 인사관리규정을 운영해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해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내하청업체가 독자성과 독립성을 잃은 명목상 존재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이 실질적 사용자라는 노조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도 같은 결론을 냈다. 항소심은 특히 임금 결정 구조를 살폈다. 하청 노조는 HD현대중공업이 공사도급계약상 공사대금을 통해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임금을 사실상 결정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HD현대중공업이 공사대금을 사내하청업체에 지급했을 뿐,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하거나 임금구조를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놨다. 옛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근로자와의 사이에 그를 지휘·감독하면서 그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라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했다.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을 하는 부당노동행위의 주체인 사용자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판단도 내놨다. 옛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엔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단체교섭은 근로계약 등 계약관계에 관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등을 위한 단체협약의 체결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범위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개별 근로계약관계의 존재 여부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이후 사건에서는 새 조문 취지에 맞춰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 측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산업계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원청이 하청 노조와 곧바로 교섭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면 개정 전 노동조합법 기준에서도 원청 사용자성이 넓게 인정되는 셈이다. 법 개정 전 법적 분쟁에 휩싸였던 CJ대한통운·현대제철·한화오션과 같은 개별 기업뿐 아니라 백화점·면세점 업계 등은 기존 법리 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는 평가다.
HD현대중공업을 대리한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개정 전 노동조합법 당시 소송이 제기됐던) 기업들에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판결"이라며 "경영계 입장에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여러 소모적인 분쟁이 많았는데 그런 분쟁이 한 번 정리된 계기가 될 것 같다"며 "이제는 구법에 대한 논란은 접고 신법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으로 노사관계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