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침술이 고령 반려견과 반려묘의 통증 관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방문 진료에 최대
500달러를 내는 보호자가 늘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와 안전성을 둘러싼 수의학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대기명단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수의사 크리스틴 밀러는 개와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이동식 침술 진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왕진 한 번에 300~500달러를 받고 있으며 현재 대기 명단까지 생겼다.밀러는 원래 전통적인 서양의학 기반 수의사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10년 전 동물 침술을 접한 뒤 서양의학 진료를 떠나 개와 고양이에게 침을 놓는 이동 진료를 시작했다. 그의 진료 현장에서는 반려견이 유기농 땅콩버터를 핥는 동안 등과 엉덩이에 가는 침이 놓인다.
대표 사례는 12세 래브라도 리트리버 ‘슈거’다. 슈거는 다리 통증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했지만, 보호자 세라 쿠스네츠는 밀러의 첫 방문 진료 뒤 다음 날 산책에서 개가 오히려 자신을 끌고 갈 정도였다고 말했다. 쿠스네츠는 원래 회의적이었지만 이후 정기적으로 밀러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밀러가 침술을 믿게 된 계기는 자신의 노령 골든리트리버 ‘머피’였다. 관절염을 앓던 머피는 약이 듣지 않자 침술을 받았고, 밀러는 이후 이동성과 활력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플로리다에 있는 치대학에서 전통 중국의학을 배운 뒤 낮에는 기존 수의 진료를 하고, 저녁과 주말에는 반려동물 침술을 병행했다.
초기에는 진료가 쉽지 않았다. 동물들이 치료 중 몸을 심하게 털면서 침이 방 안으로 날아가는 일이 있었다. 밀러는 이후 간식으로 동물의 주의를 돌리고, 찾기 쉬운 밝은 색 손잡이 침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오가며 침과 레이저 장비가 든 가방을 들고 전업 중국의학 진료를 하고 있다.
고령 반려동물, 침 맞고 생명 연장
반려동물 침술 시장이 커지는 배경에는 반려동물 고령화가 있다. 반려동물이 오래 살수록 관절 질환과 암 등 만성 질환 위험도 높아진다. 후이성 셰 박사는 "침술이 질병을 치료하지는 못하더라도 통증을 줄이고 이동성과 식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말기 상황에서 침술은 매우 잘 작동한다”고 주장했다.고령 반려묘 ‘윙’의 사례도 보호자들이 침술을 찾는 이유를 보여준다. 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에밀리 컬랜식은 윙의 침샘 암 종양 제거 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권유받았다. 그러나 매일 미드타운까지 이동해야 하는 치료가 고양이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고 비용도 부담스럽다고 판단해 밀러에게 연락했다. 그는 종양 전문의가 항암·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으면 4~6개월을 예상했다고 말하며, 남은 시간을 최대한 편안하게 보내게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윙은 4년 가까이 지난 최근에도 19세 나이로 간식을 먹으며 침술을 받고 있다.

하지만 수의학계의 평가는 갈린다. 동물이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침술은 공인 전문의 제도상 의학 전문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회의론자들은 침술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엄격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연구는 실제 변화가 아니라 보호자가 반려동물 상태를 더 좋아졌다고 인식하는 ‘보호자 플라시보 효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침 두려워하는 반려견...효과 갑론을박
미국수의침술위원회에 따르면 미국 내 수의사 약 12만7000명 가운데 침술 인증을 받은 비율은 약 4%다. 이 단체는 미국수의학협회가 동물 침술을 공식 의학 전문 분야로 인정하도록 추진해왔다. 그러나 회의적인 수의사들은 비슷한 시도가 10년 전 과학적 근거 부족으로 거부됐으며, 이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반박한다.반대 그룹 소속 수의사 브레넌 매켄지는 "침술사들이 전통과 개인 경험에 크게 의존해 진료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학적 검증보다 경험적 확신에 기대는 방식이 문제라고 본다. 셰 박사도 침술계에서 과학 연구가 역사적으로 부차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그것은 우리의 약점”이라고 말했다.
보호자들의 반응도 모두 긍정적이지는 않다. 보스턴의 메리베스 오스코프스키는 척추 부상 뒤 테리어 믹스견 ‘매디’의 치료 계획 일부로 침술을 시도했다. 그러나 12차례 가량 진료를 받은 뒤 매디는 수의사가 침을 집는 순간 의자 밑으로 숨기 시작했다. 오스코프스키는 매디가 찔리는 것을 더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매디는 냉레이저 치료는 거부하지 않았고 상태도 나아졌지만, 그 원인이 침술인지 다른 치료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