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에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인 미국과 일본 증시에서 과열 논란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관련된 기술 및 반도체 기업에 주가 상승세가 집중되며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만큼 시장 변동성이 취약해져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가 재연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특히 12일(현지시간)과 13일 발표된 높은 미국 물가 지표가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AI·반도체로 몰린 자금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뒤 약 두 달간 시가총액 100억달러 이상인 세계 주요 기업의 시총은 5조4000억달러 늘었다. 증가율은 4.2%에 달한다. 인텔, TSMC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이 증시를 주도했다. FT에 따르면 시총 100억달러 이상 반도체 업체의 기업가치는 전쟁 이후 26% 높아졌으며 증가 규모는 3조7000억달러였다.
S&P500지수에서도 시총 상위 10개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39.2%로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는 AI 쏠림 현상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시장 정보 플랫폼 알파센스 데이터에 따르면 1분기 실적 발표회를 연 대형 상장사 중 3분의 2가 AI를 언급했다. 이는 중동 전쟁을 언급한 기업 수의 약 두 배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3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닛케이225지수는 연초 대비 약 25% 상승했는데 구성 종목 225개 가운데 83개는 오히려 하락했다.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네 배 급등한 키옥시아홀딩스를 비롯해 반도체 관련 업체 등 이부 종목에 주가 상승세가 집중된 데 따른 결과다.
닛케이225 구성 대기업 시총을 그 외 도쿄증시 상장사 시총으로 나눠 산출하는 ‘NT배율’도 2021년 말 14배에서 지난 8일 16.4배까지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쿄 증권가에선 일본 증시의 NT배율 정상 범위를 13~15배로 본다.
◇높은 물가…시장 불안 부채질
이처럼 쏠림 현상이 심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이틀 연속 높은 물가 상승 통계치가 나오며 시장 불안을 부채질했다. 이날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4%, 전년 동기 대비 6% 상승했다. 시장 전망치를 세 배 웃도는 것은 물론이고 2022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전날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지수가 2023년 5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한 데 이어 물가 상승 우려를 키웠다.일반적으로 높은 물가 상승률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키워 주가에는 악재로 해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불안정한 휴전 상태 속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높은 에너지 및 운송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 해 다른 상품과 서비스 가격 또한 상승할 위험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특정 섹터에 집중된 증시 강세가 2000년 닷컴버블 붕괴처럼 작은 조짐만으로 허물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유명한 미국 공매도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와 200일 이동평균선의 이격폭이 닷컴버블 막바지인 2000년 3월 후 최고치”라며 “1999∼2000년 거품의 마지막 달에 도달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 브로드컴 인텔 마이크론 TSMC 등 주요 반도체 칩 회사를 포괄하는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한 달 새 약 40% 급등했다.
최근 주가 상승세는 기업 실적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지난 1분기 S&P500 기업 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29%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달 8일 기준으로 실적을 발표한 440곳 중 83%가 예상치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내놨다. S&P500 상위 10개 기업이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4%에 달해 ‘주가 쏠림’과 ‘이익 쏠림’이 거의 일치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서도 최근 주가 급등 이유를 일본 증시의 구조적 개선에서 찾는 이가 늘고 있다. 다케바야시 유키 씨티증권 주식파생상품부장은 “인플레이션을 배경으로 기업 실적이 오르기 시작했고 구조개혁이 진전됐다”며 “일본은 더 이상 공매도로 수익을 내는 시장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뉴욕=박신영/도쿄=최만수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