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성수에서 사려면 두 배는 줘야할 걸?"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남창동 남대문 그릇도매상가. 주말과 어린이날 연휴 사이에 낀 평일 오후였지만 인기 상가 앞은 2030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좁은 복도 사이로 접시와 컵을 든 손님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인기 매장 앞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손님들은 다닥다닥 쌓인 그릇을 칠까 봐 가방을 몸 앞으로 끌어안은 채 움직였다. 일부는 제품 사진을 찍으며 "이건 오늘의집 감성 같다"고 웃기도 했다.

신혼부부 또는 중장년층 소비자가 대부분이었던 남대문 도매상가가 2030의 '그릇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상인들은 올해 소비자층이 180도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에는 젊은 소비자의 경우 혼수 준비를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1인 가구나 데이트를 위해 오는 손님까지 많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생활 인프라 공간이던 그릇도매시장이 취향을 탐색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온라인 쇼핑처럼 원하는 제품을 즉시 구매하기보다 직접 발품을 팔며 예상치 못한 물건을 발견하는 경험 자체를 즐기는 2030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구경하는 재미에 빠진 2030…소품샵 대신 '발품 소비'

2030 소비자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보다 도매시장에서 직접 물건을 찾으며 취향에 맞는 예상치 못한 제품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고 있었다. 이경민 씨(26)와 홍창범 씨(27)는 데이트를 위해 남대문 그릇도매상가를 찾았다. 이씨는 "인스타에서 보고 제가 오자고 했다"며 "성수동 소품샵은 브랜드 위주다. 여기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쉬운 가격대부터 다양하게 있어서 구경하는 것부터 재밌다"고 말했다. 홍씨는 "발품 팔러 오는 거죠"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남대문 그릇도매상가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1000원부터 10만원대까지 다양했다. 브랜드 또한 마찬가지다. 무명 제품부터 태국 여행 필수템으로 꼽히는 '바사나퓨터'까지 종류도 많았다. 다만 제품들은 소품샵처럼 정갈하게 진열돼 있기보다 종류별로 빼곡히 쌓여 있었다. 손님들은 가격을 직접 확인하거나 그릇을 꺼내 보며 원하는 제품을 찾아다녔다.
2030은 이 과정 자체를 즐겼다. 김승연 씨(24)는 "일본스러운 제품이 많아서 재밌었다. 이자카야 가야 볼 수 있는 제품을 직접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이 온 하다윤 씨(24)는 "트위터랑 인스타에서 여기가 많이 나와서 궁금한 것도 있었다"며 "머그컵 정도 가볍게 보려고 왔다가 생각보다 제품이 많아서 찾는 재미가 있더라"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주말 남대문 시장 풀코스' 등 단순 소비 인증이 아닌 경험 인증 유형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13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2일까지 '남대문 그릇'에 대한 언급량은 전년 동기간 대비 325% 이상 늘어났다. 이날 기준 인스타그램 '남대문' 해시태그 게시물은 27만개를 넘었다.
"2030 손님이 90%"…주말 오후엔 발 디딜 틈 없어

상인들은 소비자층 변화를 실감했다.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가정용, 혼수용 제품을 사는 손님이 급감했으나 올해 들어 2030 소비자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는 것이 상인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남대문 시장에서 40년간 그릇을 팔았다는 박병수 씨(69)는 "예전에는 5060 중장년층이 많이 왔는데 지금은 2030 손님이 90% 정도"라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점차 오더니 올해 확 달라졌다. 이렇게 많이 온 적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손님 유형도 다양해졌다. 박씨는 "전에는 젊은 손님들은 대부분 혼수 마련하러 오는 분이었다. 지금은 혼수 반, 1인 가구 반 정도로 비슷하다"며 "배달시켜 먹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먹고 싶어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더라. 그릇은 매일 접하는 상품이라 취향에 민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뚜렷한 유행 아이템도 사라졌다. 생활 인프라 물건이 취향 영역으로 넓어지면서 나타난 변화다. 과거에는 흰색이나 잔무늬 제품이 주로 팔렸다면 최근에는 형광 연두색 계열부터 고양이·새 모양 제품, 거친 질감의 그릇 등 취향도 다양해졌다고 상인들은 설명했다.
손님이 붐비는 날도 많아졌다. 남대문 그릇도매상가에서 25년 동안 관리원으로 근무한 70대 후반 조철구 씨는 "주말 오후마다 복도 길이 막힐 정도로 굉장하다"며 "지난해만 해도 상가에 손님이 별 없었다. 혼수하는 손님들도 별로 없어서 죽어갔다. 그나마 가끔 중동이나 말레이시아 손님들이 왔는데 이제는 국내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취향·탐색·가격 합리성 다 잡아"…변하는 2030 소비패턴

전문가는 2030의 소비 방향이 가성비에서 가심비·탐색의 재미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그릇은 집에서 갖춰야 할 생필품"이라며 "그릇에 취향을 반영하는 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아이템으로 그릇을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교수는 "2030이 남대문 시장을 찾는 건 단순 절약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 가격은 물론 직접 돌아다니면서 취향을 만족시키는 니즈(요구)를 복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스마트한 소비에 가깝다"고 부연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