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지수가 장중 7500을 터치하자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9000으로 상향했다. 하지만 주식계좌를 보는 개인투자자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600여 개 종목이 일제히 오른 2021년의 ‘동학개미운동’ 때와 달리 일부 종목만 급등하는 쏠림현상이 심해져 투자자의 선택에 따라 성과가 크게 갈려서다. 자산 규모가 작을수록 쏠림에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8일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주식시장 상승장을 분석한 결과 지수가 큰 폭으로 오르더라도 상승한 종목 비중은 20~30%에 그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지수가 6.45% 급등해 7000을 넘어선 지난 6일 주가가 오른 종목은 200개에 그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0% 넘게 뛰는 등 전체 상장 종목의 22.4%가 급격한 상승장을 만들어냈다. 코스피지수가 0.11% 상승해 7498.0을 기록한 8일에도 주가가 오른 종목은 약 353개로 전체의 39%에 그쳤다.
이런 쏠림은 과거 랠리와는 다른 양상이다. 2021년 1월 7일 코스피지수가 3000을 넘어설 때는 617개(68.2%) 종목이 상승했다. 최근 시장 상황을 당시와 비교하면 상승 종목 수가 3분의 1토막 난 셈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승 종목에 대한 거래량 쏠림을 나타내는 트린지수는 6일 0.11까지 하락했다. 이 지수가 0.5를 밑돌면 상승 종목에 거래량이 과도하게 집중된 단기 과매수 신호로 해석한다.
코스피지수가 4000을 넘어설 때만 해도 시장이 이렇지는 않았다. 지난해 10월 27일 상승 종목은 562개로 비중이 60.4%였다. 하지만 올 들어 코스피지수가 5000과 6000을 돌파할 때 상승 종목이 각각 411개(44.4%), 448개(48.4%)로 줄어드는 등 쏠림이 본격화했다. 풍부한 유동성이 대다수 종목의 상승을 이끈 과거와 달리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의 호실적을 기반으로 한 랠리가 나타나며 실적이 좋은 기업만 주가가 오르는 장이 열린 것이다.
투자자별 명암도 엇갈렸다. 미래에셋증권이 자산 규모별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소액투자자가 낮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됐다. 계좌 1억원 미만 투자자의 수익률은 10.55%로 10억원 이상 투자자 수익률 17.54%에 비해 약 7%포인트 낮았다.
커지는 상대적 박탈감…'코스피 7500'의 그림자
10억 이상 고액 자산가 17% 벌때 1억 미만 투자자는 10%에 불과
10억 이상 고액 자산가 17% 벌때 1억 미만 투자자는 10%에 불과

30대 직장인 진모씨는 최근 코스피지수가 7500을 돌파했다는 소식에도 마음이 무겁다. 석 달 전 반도체 대형주가 이미 고점이라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바이오주로 눈을 돌렸지만 20%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그사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60~80% 오르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진씨는 “주변에서 반도체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국내 주식 활동 계좌가 1억 개를 돌파하며 ‘전 국민 주식 투자 시대’가 도래했지만, 개인투자자의 표정은 엇갈리고 있다. 반도체의 빈자리를 변동성이 큰 종목으로 채우려던 일부 개미는 낮은 수익률에 허덕이는 반면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을 공략한 고액 자산가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업종으로의 ‘K자형 증시 쏠림’이 낳은 현상이다.
◇자산가일수록 반도체주 많이 사
8일 한국경제신문이 미래에셋증권에 의뢰해 지난 2~4월 고객 계좌 잔액별 수익률(미실현 수익 포함)을 분석한 결과 자산 규모가 클수록 주식 투자 수익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잔액 10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의 평균 수익률은 17.54%였다. 1억원 미만 소액 투자자(10.55%)보다 1.7배, 1억원 이상~10억원 미만 투자자(13.32%)보다 1.3배 높았다.반도체 관련주를 샀느냐가 이 같은 격차를 불러왔다. 10억원 이상 자산가의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중 반도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종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삼성전자우, SK스퀘어, 파두 등 5개였다. 이 중 반도체 팹리스 기업 파두는 무려 268% 올랐고, 나머지 네 개 종목도 30~40%의 수익을 냈다. 5위에 오른 OCI홀딩스는 태양광·반도체용 폴리실리콘을 우주용으로 확장할 것이란 기대에 218.9% 급등했다.
반면 1억원 미만 개미 투자자의 순매수 종목 중 반도체 관련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곳뿐이었다. 그 대신 네이버, 한국전력, 삼천당제약 등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종목이 순위권에 들었다. 1억원 이상~10억원 미만 투자자 역시 반도체 관련주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전자우 등 3개에 그쳤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소액 투자자는 대형주를 짧은 주기로 사고파는 경향이 강하지만, 고액 자산가는 장기 보유한다는 점도 수익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TF 시장도 반도체가 압도
‘반도체주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 격차는 5월 들어 더 심해졌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코스피지수가 7000 시대를 열었지만, 상승분 대부분이 반도체여서다. 지난달 말 대비 KRX 업종별 지수 상승률을 보면 KRX 반도체가 14.99%로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자동차(7.20%), 보험(4.17%), 경기소비재(3.28%) 등은 상승률이 한 자릿수에 그쳤고 유틸리티(-5.58%), 헬스케어(-5.24%), K콘텐츠(-5.01%) 등은 오히려 마이너스였다.상장지수펀드(ETF) 시장도 마찬가지다. ETF체크에 따르면 최근 1주일간 ETF 수익률 1, 2위는 ‘TIGER 200IT레버리지’(39.12%)와 ‘KODEX 반도체레버리지’(33.80%)였다. 둘 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상품이다.
코스피지수가 7500선 안착에 바짝 다가선 이날도 시장의 온기는 제한적이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11% 소폭 상승한 7498.0으로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상승세로 마감한 종목(353개)보다 하락한 종목(491개)이 더 많았다.
강진규/이선아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