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서울역 인근의 한 대형마트 신선식품 매장. 산더미처럼 쌓인 계란 매대 앞을 지나던 소비자들은 좀처럼 카트에 물건을 담지 못했다. 매대에 가장 크게 적힌 30구 특란 가격은 7690원. 정부의 농식품부 할인 지원이 적용돼 6990원에 판매 중이었지만 여전히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가격이었다.
체감 가격은 더 뛰었다. CJ제일제당의 '1등급 무항생제 계란(15구)'은 7490원, 풀무원의 '동물복지 목초란(15구)'은 9990원에 달했다. 하림의 '무항생제 신선란 영양란(25구)'은 1만1990원으로 1만원을 훌쩍 넘겼다. 계란 매대 앞에서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한참을 서성이던 40대 소비자는 고민 끝에 6990원짜리 30구 특란을 카트에 담았다.
계란 가격이 계속 고공행진 하고 있다. 9일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계란 특란 1판(30개)의 전국 평균 소비자가격은 7273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지역별 체감 물가는 더 높았다. 4일 기준 서울은 7944원으로 8000원선에 근접했고, 대전과 부산은 7613원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광주(7562원) 제주(7531원) 강원(7499원) 전북(7499원) 등 상당수 지역이 7000원을 넘겼다.
AI 직격탄에 산란계 1000만 마리 살처분…공급 절벽
올 2월 설 직후 정부 할인 지원 등으로 일시적으로 6000원대까지 내려갔던 계란값은 지원 종료 및 수급 불안이 겹치며 최근 다시 10% 이상 급등했다. 심리적 저항선인 7000원을 뚫은 데 이어 8000원 선마저 넘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계란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핵심 원인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공급 부족이다. 고병원성 AI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지난 겨울 가금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21건이었다. 이 가운데 산란계 농장 발병 건수만 11건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5건 늘었다. 그 결과 지난 4월까지 살처분된 산란계 규모만 10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전년도(483만 마리)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1분기 가축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더욱 뚜렷했다. 알을 가장 활발하게 낳는 6개월 이상 산란계 사육 마릿수는 5612만7000마리로 전년 동기 대비 5.5% 급감했다. 여기에 동물복지 기준 강화에 따른 사육 밀도 제한까지 본격 시행되며 전체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5000원대 '태국산'에 몰리는 소비자…마트는 물가 방어전
치솟는 국산 계란값에 대형마트들은 수입산 계란을 도입하고 대규모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홈플러스는 지난달 19일부터 대형마트 최초로 4만6000여 판의 태국산 신선란을 들여와 한정 수량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30구 한 판에 5890원으로, 지난 7일 마지막 6차 판매에 들어갔다.

롯데마트는 지난 2월부터 농림축산식품부와 협력해 '농산물 할인 지원(농할)' 행사를 진행 중이다. 정부 지원금에 롯데마트 자체 할인을 더해 이달 말까지 국산 특란인 '행복생생란'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할 예정이다.
계란 수급 대란에 대비해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최우선으로 산지 거래량을 늘려 비축 물량 확보에 나선 대형마트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란값 폭등이 가계를 넘어 외식·자영업계의 생존까지 위협하자 정부도 물가 잡기에 나섰다. 수급 안정을 위해 5월 초까지 태국산과 미국산 신선란을 들여오고, 유통 단계의 과도한 마진이나 담합 적발 시 정책자금 지원을 배제하는 등 강력 대응에 착수했다.
다만 업계는 당분간 고물가 기조가 꺾이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산란계 마릿수가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렵다"며 "유통 채널에서 노력하겠지만 근본적인 공급 부족 탓에 계란값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