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아버지’란 무엇인가. 성씨로 대물림되는 부성은 한 사람이 누구의 자식인지, 무엇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규정해온 인류사의 오래된 장치다. 부성은 가족 안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종교와 정치 권력, 나아가 사회 질서를 짜는 핵심 원리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부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바뀌어 왔는지는 관심이 적었다.
흔들릴 때마다 새로 쓴 부성
역사학자 어거스틴 세지윅은 <아버지의 역사>에서 서구권 문화 속 부성의 변천사를 짚어낸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헨리 8세, 토머스 제퍼슨 등 서구사의 주요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며 아버지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주됐는지를 추적한다.저자의 시각에서 ‘백인 아버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부장제 전통을 구축해 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통이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남성의 권위가 흔들릴 때마다, 혹은 기존 질서를 더는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질 때마다 새로운 부성의 모델이 등장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위기, 기독교의 부상, 종교개혁, 유럽인의 신세계 진출, 군주제의 균열, 산업화와 근대 가족의 변화가 모두 그런 전환점이었다. 저자는 이 사상들이 각 인물의 개인적 경험과 깊이 맞물려 있었다고 본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사적 가정을 해체하자고 주장하며 공동 양육을 제안했다. 가부장적 가정에서 비롯된 재산이 아테네의 정치와 정의를 타락시키고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질서 연구 등을 통해 부권을 통해 통치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점을 밝히려고 애썼다. 저자는 아테네 바깥 출신으로 지위가 불안정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처지가 이 같은 부권 옹호론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한다. 흔들리는 자신의 위치를 자연 질서의 힘을 빌려 정당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아버지는 또 다른 의미를 띤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버지를 선한 가정과 사회의 출발점으로 봤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부계로 계승되는 ‘원죄’의 개념을 통해 아버지를 인간 타락의 통로로 사유했다.
그러나 여기서 부성의 권위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버지는 자녀를 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존재가 됐다. 모든 권위의 궁극적 원천을 하느님에게 돌리면서, 지상의 아버지와 교회의 권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저자는 생물학적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를 거부하고 신을 아버지로 삼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인사가 이 사상의 씨앗이었다고 본다.
근대에 들어 부성은 절대적인 권위를 얻기에 이른다. 16세기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는 혼인과 출산, 계승 문제를 국가 권력의 핵심으로 끌어올렸다. 사생아 헨리 피츠로이를 왕위 계승자로 삼으려 한 시도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피츠로이의 존재를 과시했지만, 아들이 일찍 숨지자 그 죽음을 감추기 위해 비밀리에 장례를 치렀다.
부성은 과시돼야 할 권력이면서 동시에 실패가 드러나서는 안 되는 약점이기도 했다. 헨리 8세가 1540년 서명한 유언법 역시 중요하다. 장자 상속 같은 기존 규칙보다 아버지의 유언을 통해 재산 배분이 가능해지면서, 부권은 모든 것을 장악하는 권위로 확장됐다.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원주민들에게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너희들의 아버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예 여성에게서 태어난 자신들의 아이들을 인정하기 부담스러울 땐 친부라는 점을 부인하기도 했다.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미드 소로는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부장의 경제적 기반이 위태로워지자 돈과 부성의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새로운 부성의 양상을 보여줬다. 저자는 부성을 심리적·무의식적 차원에서 재해석한 프로이트의 철학도 그의 아버지 및 딸과의 관계와 연결해 해석한다.
포옹하는 아빠로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은 밥 딜런이다. 저자는 딜런을 통해 전후 사회에서 권위적적인 아버지가 자녀와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아빠’로 변화하는 장면을 포착한다. 다만 그는 정치적으로는 가부장제 및 전통적 가정 규범을 거부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집에 돌아가면 푸근한 아내가 있고, 밥을 먹고 나서 잠자리에 드는” 과거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었다. 반항과 향수가 내면에서 충돌한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오늘날 부성은 또 한 번의 전환점에 서 있다. 정확한 친자 확인 기술은 부성을 신화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돌봄 역할의 재분배도 아버지를 더 이상 가족 바깥의 권위자로 머물 수 없게 만든다. 과거의 부성이 상속, 지배의 언어였다면 새로운 부성은 돌봄과 상호성의 언어에 가까워지고 있다.
저자는 아버지가 비로소 권위의 무게에서 벗어나 관계의 자리로 이동할 가능성을 짚는다. 책은 아들에게 건네는 고백으로 끝난다. “책을 쓰면서 아빠는 깨달았어. 그저 나는 나 자신을 재밌고, 포옹 잘하는 아버지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부성의 역사를 추적한 끝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한 아이를 안아주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