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신기는 일본 국민가수에요."
"트와이스를 모르면 일본인이 아니죠."
일본 황금연휴(4월 말~5월 초)를 달군 키워드는 K팝이었다. 일본 최고로 인정받는 3대 공연장이 죄다 K팝 무대로 변신해서다.
동방신기는 요코하마에 있는 닛산 스타디움을 채웠고, 트와이스는 해외 아티스트 최초로 도쿄국립경기장에 입성했다. 에스파는 '꿈의 무대'로 불리는 도쿄돔 무대에 올랐다. 이들이 동원한 관객은 46만4000명에 이른다. 동방신기가 이틀간 13만명, 트와이스는 사흘간 24만명, 에스파는 이틀간 9만4000명을 만났다.
같은 기간 데이식스도 도쿄 게이오 아레나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황금연휴 시작과 함께 몬스타엑스는 일본 지바 라라 아레나 도쿄 베이에서 공연했다. 두 곳 모두 1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이렇게 K팝은 지난주 일본 수도권 공연장을 점령했다.
눈길을 끄는 건 아이돌 2세대인 동방신기부터 3세대 트와이스, 4세대 에스파까지 모두 흥행했다는 점이다. 데뷔 24년차 동방신기와 12년차 트와이스에 대해 "모객 능력으로 따지면 전성기 못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뉴 페이스'로 빠르게 옮겨가는 한국의 팬덤 문화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동방신기 공연장은 세대 대통합의 장이었다. 부모와 동행한 20대 딸은 "동방신기 공연은 온 가족이 다 함께 즐길 수 있어서 더 특별하다"고 했고, 20년 차 '카시오페아(공식 팬덤명)'라고 밝힌 30대 팬은 "윤호·창민은 함께 세월을 보낸 오랜 친구"라고 했다. 50대 팬은 "동방신기 덕분에 오랜만에 빨간색 옷을 맞춰 입었다"며 웃었다.
김진우 음악 전문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일본에서 K팝이 자리잡으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즐기는 문화가 정착됐다"며 "동방신기 팬인 부모가 자녀와 K팝 문화를 공유하면서 취향을 대물림하는 '세대 간 영향력'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K팝 전성시대'를 이끈 일등공신이다. 지난해 일본에 수출한 음반 판매액은 8062만5000달러로, 수년째 'K팝 음반 최대 수출국' 타이틀을 쥐고 있다. 일본 내 K팝 유튜브 조회수는 2022년 40억6000만 뷰, 2023년 45억7000만 뷰, 2024년 49억5000만 뷰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 1분기 들어 음반 수출액이 미국에 밀려 2위로 떨어졌지만, 일본은 여전히 가장 충성도가 높은 K팝 시장으로 꼽힌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일본 음악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일본의 '덕후' 시장 규모는 8101억엔으로, 이 중 1900억엔은 아이돌 몫이었다. 아이돌은 이 모든 덕후 시장에서 소비자가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분야다. 한마디로 돈이 된다는 얘기다. 아이돌 덕후 네 명 중 한 명은 매주 10시간 이상 팬덤 활동에 투자하며, 매년 5만엔 이상을 이 분야에 쓴다.
일본은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문화가 정착한 덕분에 수도권에만 15개가 넘는 대규모 공연장이 자리잡고 있다. 2024년 일본 라이브 시장 총매출은 6122억엔(약 5조684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0%나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공연 시장 전체 티켓 판매액(1조4589억원)의 약 4배에 이르는 규모다.
일본 공연시장을 키운 주역은 다름 아닌 K팝이다. 2024년 일본에서 해외 가수들이 공연을 통해 거둔 매출은 1335억엔(약 1조2395억원)으로 전체 공연매출의 21.8%를 차지했다. 해외 가수 매출의 절반 이상은 K팝 몫이었다. 관중 동원 수로 보면 K팝(578만6000명)이 전체 해외 아티스트 공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4%에 달했다.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닛케이엔타가 집계한 '2025 라이브 동원력' 순위에서 세븐틴은 일본 보이그룹인 스노우 맨의 뒤를 이어 2024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세븐틴 외에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트와이스, 동방신기가 톱 20에 이름을 올렸다. 트와이스는 전년도 29위에서 18위로 11계단이나 상승했다.


이런 대규모 공연은 일본 경제에도 '플러스 효과'를 안겨줬다. 공연이 열릴 때마다 숙소와 식당, 쇼핑몰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일본 황금연휴 기간에 찾은 시부야와 하라주쿠에 터를 잡은 쇼핑몰과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BTS 노믹스' 같은 K팝 팬덤 효과가 같은 맥락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관광공사 조사 결과 지난 3월 21일 열린 BTS의 광화문 컴백 공연을 찾은 외국인은 평균 8.7일 한국에 머무르며 1인당 353만원씩 썼다. 이는 올해 1분기 외래 관광객의 평균 체류일수(6.1일)보다 2.6일 길고, 1인당 평균 지출액(245만원)도 108만원 많았다.
4월 초 BTS의 고양종합운동장 공연을 찾은 외국인 관람객도 평균 7.4일 체류하고, 291만원을 소비했다. 경기 고양 일산서구 대화동 일대는 전년 동기 대비 외국인 방문객이 35배 늘었고, 소비 금액 역시 38배 급증했다. 특히 팬들은 공연 전후로 서울 용산, 명동,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방문하며 폭넓게 '팬슈머' 투어 양상을 보였다.
박선민 대중문화 평론가 겸 경기대 한류문화대학원 주임교수는 "팬덤은 단순히 음악을 넘어 응원 자체에 의미를 둔다"며 "팬들은 가수가 찾은 식당과 명소를 찾아다니며 소비하기 때문에 경제 유발효과가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강력한 K팝 소프트웨어를 갖췄지만, 공연장 등 하드웨어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림픽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서울월드컵경기장 역시 잔디 훼손 문제로 대관이 어려워지면서 대형 공연은 서울에 비해 인프라가 떨어지는 고양·인천에서 열린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회장은 "일본 황금연휴 공연을 보면서 수도권에 이렇게 많은 공연장이 있다는 것과 대형 공연이 동시에 열려도 좌석이 다 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팬덤의 '설렘'은 단순 '덕질' 소비를 넘어서 실질적인 경제 지표를 움직이는 '덕질 경제'로 자리잡았습니다. K-컬처를 매개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총망라해 대중의 열광이 어떻게 '설레는 소비'로 치환되는지 그 이면의 수익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을 날카롭게 포착하고자 합니다.
도쿄, 요코하마=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