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잔류 결정
파월 의장은 2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오늘이 (의장으로서) 마지막 기자회견”이라며 워시 의장 후보에게 “축하한다”고 했다. 앞서 워시 의장의 인준안이 상원 은행위원회를 통과한데 다른 것이다. 파월의 의장 임기는 내달 15일 끝난다. 의회는 그전에 본회의를 열어 워시 후보에 대한 인준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파월 의장은 그러나 “Fed에 대한 일련의 불법적인 공격을 우려”한다며 이사직은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이사직 잔여 임기는 2028년 1월까지다. 그는 이런 공격이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통화정책을 채택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이 물러나는 시점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때”라고 했다.
Fed 의장은 이사 임기가 남아 있어도 의장직이 끝나면 퇴임하는 것이 관례였다. 폴 볼커,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전 의장은 의장 임기가 끝나는 날 이사직도 내려놨다.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의장·이사 임기가 함께 종료됐다. 의장이 임기가 남았는데도 행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물러나지 않은 전례를 찾으려면 1950년대 초 매리너 에클스 전 의장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X)에 올린 글에서 “제도주의자를 자처하던 인물이 잔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통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이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남는 것이라고 조롱했다.

○‘매파 트리오’의 등장
FOMC는 이날 정책금리를 현 수준(연 3.5~3.75%)으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3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한 Fed는 올해 들어 세 차례 연속으로 현상유지를 선택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유가를 중심으로 한 물가상승세 우려가 커지는데 따른 것이다.다만 이날 FOMC 성명서에는 12명의 FOMC 위원 중 4명이 반대했다. 한 회의에서 4명의 위원이 반대 의견을 낸 것은 1992년 이후 34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임명한 스티븐 미란 이사는 0.25%포인트 금리인하를 주장했다. 반면 닐 카시카리, 베스 해맥, 로리 로건 3명은 성명서에 ‘목표 달성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발생할 경우 적절한 수준으로 통화정책 기조를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는 문구가 통화 완화기조를 시사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란 전쟁으로 인한 충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인하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얘기다.
밥 미셸 JP모간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매파 트리오’의 등장이 워시 의장후보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그는 블룸버그통신에 “(위원들이) ‘우리는 반대 의견을 낼 수도 있다. 그에 대비하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Fed 독립성 최대 위기
차기 의장이 풀어야 하는 과제는 산적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의장 자리에 오르는 워시 후보가 대통령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이코노미스트지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를 5년 동안 웃도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Fed가 50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한 것을 뜻한다”고 평가했다. 1970년대에 아서 번즈 전 의장이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압박으로 금리를 낮췄다가 물가 급등을 야기한 바 있다. 이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임명한 볼커 의장이 등장하면서 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려 물가를 잡았다. '50년'이라는 표현은 70년대 이후 Fed가 지켜 온 독립성이 다시 한 번 도전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Fed와 미 국채에 대한 시장 신뢰와 직결된 문제다.
의장이 되더라도 FOMC에서 행사할 수 있는 표는 1표에 불과하다. 의장의 힘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위원들을 설득해 조화시키는 데서 나온다. 워시 차기 의장이 FOMC 위원 간의 분열을 봉합하는 능력을 보일 수 있을지 관심이다.
파월시대 키워드: 코로나19, 중앙은행 독립성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내달 15일을 끝으로 8년에 걸친 의장직을 내려놓는다.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Fed 이사로 임명한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때인 2018년 2월 Fed 의장 자리에 올랐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연임시켰다.
‘파월 시대’를 규정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코로나19와 중앙은행 독립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에서도 자신이 지명한 파월 의장이 금리를 낮추지 않는다며 불평했지만 파월 의장은 이에 따르지 않고 높은 금리수준을 유지했다.
갑자기 닥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망 교란과 물가 폭등은 파월 의장이 겪은 최대 위기로 꼽힌다. 2020년 3월 팬데믹 사태가 본격화하자 Fed는 금리를 신속하게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유동성 지원을 급격히 늘렸다.
하지만 2021년 들어 물가상승세가 시작되었을 때 이를 ‘일시적인’ 것으로 판단했고, 이는 금리 인상을 너무 늦추는 실책으로 이어졌다. 2022년 6월 미국 물가상승률은 9.1%까지 급등했는데 그해 3월에야 올리기 시작한 기준금리는 1.5~1.75% 수준에 그쳤다.
이후 Fed는 2024년까지 5.25~5.5%까지 금리를 순차적으로 올렸지만 두고두고 ‘너무 늦은’ 파월이라는 비판이 따르는 계기가 됐다. 대신 재임 기간 실업률이 4% 이하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임금 하위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상승한 것은 성과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2기 정부 들어서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지키는 ‘투사’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Fed 건물 공사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난 것을 문제삼아 법무부가 그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면서 이런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지난 1월에는 저항 의지를 보이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