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이동통신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5G 인프라를 깔아놓고도 정작 수익화엔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은 망 중립성 규제가 통신사의 프리미엄 서비스 설계를 가로막는 가운데 일본·싱가포르 등 선도 시장은 이미 5G 단독모드(SA) 기반 프리미엄 요금제로 두 자릿수에 가까운 매출 성장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고 촘촘한 인프라를 구축한 대표적 시장으로 꼽히지만, 이동통신사들의 수익화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기 5G 서비스가 LTE(롱텀에볼루션)와 차별화된 이용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면서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 개선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세계적 수준의 네트워크가 프리미엄 서비스와 추가 매출로는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니콜 맥코믹 옴디아 5G·브로드밴드 수석 애널리스트(사진)는 25년 경력의 글로벌 이동통신 산업 전문가로, 5G 수익화와 요금제 차등화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통신 시장을 분석해온 그를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옴디아 한국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 이동통신사들이 5G 시장에서 잘하고 있습니까.
"한국 이동통신사들은 AI 혁신 측면에서 세계 선두권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체적인 AI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관점에서 봐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입니다."
▶ 한국 이통사들이 5G 수익화 과정에서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입니까.
"저는 5G 시장을 두 단계로 나눠서 봅니다. 1단계는 지금까지 구축해온 네트워크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4G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수익화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진화의 시작점에 와 있습니다. 흔히 '5G 플러스'라고 불리는 단계인데, 5G SA와 5G-어드밴스드(Advanced)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수익화를 훨씬 용이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기술들이 가져오는 건 단순히 다운링크(downlink·데이터 수신) 속도 향상만이 아닙니다. 업링크(uplink·데이터 송신) 품질 개선도 이뤄지는데, 이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나 라이브 스트리머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기에 저지연(low latency·데이터 전송 지연 최소화)까지 더해지면서 새로운 수익화 기회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 한국 상황을 세계 주요 이동통신 시장들과 비교해본다면요.
"싱가포르, 중국, 일본 같은 1티어(최상위) 시장들은 이미 이러한 새로운 기술들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KDDI의 au입니다. au는 'Fast Lane'이라는 새로운 VIP 요금제를 출시했는데, 기존 5G 요금제 대비 약 4%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이 요금제에는 소비자를 위한 네트워크 슬라이스(network slice·망 분할)가 포함돼 있어요. 예를 들어 틱톡 같은 영상을 볼 때 더 나은 성능을 보장하는 전용 네트워크 구간을 제공하는 거죠. 이 서비스는 지난해 7월에 출시됐는데 이미 80만 가입자를 확보했습니다.
더 주목할 만한 건 au의 브랜드 전략 변화입니다. 기존에는 가입자들이 저가 서브브랜드로 이탈하는 게 고민이었는데, 최근 이 흐름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어요. 가입자들이 다시 상위 요금제로 올라오고 있는 겁니다. 이런 혁신 덕분에 au의 모바일 서비스 매출이 최근 8.5% 늘어났습니다. 한국 이통사 입장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일 겁니다."

▶ 글로벌 이통사들이 5G SA 기반으로 프리미엄 요금제를 상용화한 사례를 소개해주신다면요.
"싱가포르의 싱텔(Singtel)이 네트워크 슬라이싱의 대표 사례입니다. 싱텔은 후불 가입자들 대상으로 두 개의 별도 네트워크 슬라이스를 만들었어요. 하나는 기존 대비 2배 빠른 속도를 보장하고, 다른 하나는 4배 빠른 속도를 보장합니다. 후불 요금제 전체를 전용 네트워크 슬라이싱으로 운영한 건 세계 최초입니다.
기존 5G 네트워크의 다운링크 속도는 약 500Mbps(메가비트 퍼 세컨드) 수준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5G는 UAE 같은 시장에서 최대 3Gbps(기가비트 퍼 세컨드), 중국에서는 최대 5Gbps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기존 5G와 새로운 5G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죠.
한국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한국 이동통신사 두 곳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5G SA 구축을 진행하고 있더라고요. 글로벌 모범 사례를 검토하면서 한국 시장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고 있는 단계입니다."
▶ 새로운 프리미엄 서비스와 수익 기회를 창출하는 데 있어 이 기술들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봅니까.
"매우 중요합니다. 선두 시장들은 이미 이 기술들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초기 피드백을 보면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5G SA, 5G-Advanced를 통해 긍정적인 성과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 일부 시장에서는 초기 단계이지만 성공 사례들이 점점 쌓이고 있어요.
가장 큰 리스크는 명확합니다. 이 차세대 기술을 수익화하지 못하면 이동통신사가 전기나 수도처럼 그냥 인프라만 제공하는 유틸리티 서비스로 전락하는 거예요. 이건 어느 이통사도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입니다."
▶ 한국은 망 중립성 규제가 강한 편인데, 이것이 이동통신사의 수익화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십니까.
"싱가포르를 포함한 1티어 시장들은 별도의 망 중립성 규제가 없습니다. 다른 최상위 시장들도 마찬가지예요. 이통사와 규제 기관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ARPU를 높이고, 모바일 서비스 매출을 성장시키고, 가입자 이탈률을 낮추고, NPS(Net Promoter Score·고객 추천 지수)를 개선하려면 네트워크를 세분화하고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유연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국내에도 필요한 메시지 같습니다.
"글로벌 선도 시장들의 5G 요금 혁신을 따라가려면 망 중립성에 대한 유연하고 자유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지금 1티어 시장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흐름이 바로 그겁니다. 한국이 1티어 시장으로 올라서려면 네트워크를 세분화하고 슬라이싱할 수 있는 비슷한 수준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