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미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하나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그의 작품이 전시되는 장소엔 관객이 구름처럼 몰린다.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잡아끄는 건 붓질이다.
내면의 격정과 고통을 담아 두껍게 쌓아올린 물감, 화면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거친 붓자국은 스크린이나 인쇄된 그림으로는 느낄 수 없다. 직접 원화 앞에 서서 캔버스 위에 남은 물감의 두께와 결, 붓이 지나간 방향과 속도를 눈으로 따라간 관객만이 130여 년 전 고흐가 붓을 휘두르던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다음달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하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에는 고흐의 작품 두 점이 포함돼 있다. 1886년 고흐가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때 그린 ‘카네이션이 있는 꽃병’, 1890년 오베르에 체류할 때 그린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다. 이 중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고흐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림이다.
격정 속 한순간의 평온함
고흐는 37년 인생의 대부분을 방황하며 보냈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판매원, 책방 점원, 탄광촌의 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괴팍한 성격 때문에 번번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랬던 고흐가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건 27세였던 1880년이 돼서였다. 그가 제대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10년 남짓. 그 짧은 시간 동안 고흐는 유화 약 860점, 소묘 약 1200점을 남겼다.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1890년 7월,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달 전에 그린 작품이다. 37세였던 고흐는 당시 남프랑스 생레미의 정신병원을 나와 파리 북서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미술 애호가이자 의사인 폴 가셰 박사의 치료를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격정적인 붓터치의 작품들을 그리던 그는 7월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그런데 이 그림의 분위기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흐 작품의 분위기와 다소 차이가 있다. 수평적인 안정감과 청량한 색채 덕분에 그림은 평온하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우아즈 강변이 고흐에게 마음의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2017년 개봉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도 우아즈 강변은 고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공간으로 묘사된다. 극도의 정신적 긴장 속에서 고흐가 잠시나마 찾았던 평안의 순간이 이 그림에 담겨 있다.
붓터치가 말해주는 감정
이 작품은 같은 시기 고흐가 그린 그림들과 정반대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대부분의 다른 작품에서는 붓질이 격렬하게 요동치듯 소용돌이 패턴으로 그려져 있는 반면, 우아즈 강가에서는 수평으로 고요하게 흐른다.
같은 풍경이라도 화가의 감정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로 인해 고흐 이후에는 붓터치로 감정을 표현하는 화가들이 급증하게 된다. 훗날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이 고흐를 선배로 존경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그림 앞에 선다면 몇 가지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붓터치의 방향이다. 강물과 하늘, 강변의 풀밭 붓터치가 대부분 잔잔하게 눕혀져 있다. 색채도 흥미롭다. 파란 하늘과 물 위에 반사된 주황빛이 보색 대비로 그림에 긴장감을 주면서도 전체적인 톤은 차분하다. 마지막으로, 원화 앞에서만 볼 수 있는 물감의 두께와 질감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전시에 함께 나오는 고흐의 작품 '카네이션이 있는 꽃병'(1886)은 오베르보다 4년 전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작품이다. 당시 고흐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빨간색과 분홍색 등 밝은 색채를 처음 실험하고 있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보면 고흐의 색채와 표현이 4년 사이에 얼마나 달라졌는지 체감할 수 있다.

전시는 5월 28일부터 8월 2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현재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 중이다. 성인 정가(2만3000원) 대비 약 35% 할인된 1만5000원으로 7월 22일까지 입장할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