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 4만 명’과 ‘오탈자(변호사시험 5회 탈락자) 2000명’ 시대가 동시에 열렸다.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서초동 변호사’들과 높아지는 합격 문턱 앞에 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 양쪽 모두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4일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현재 등록 변호사 3만8234명에 전날 확정된 제15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1714명을 더하면 총 3만9948명으로 4만 명에 육박한다. 이번 합격률은 50.95%로 역대 세 번째로 낮았다. 졸업 후 5년 안에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응시 자격마저 잃은 로스쿨 출신은 지난해 기준 누적 1918명으로, 올해 시험 결과 2000명을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바라보는 법조계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변협은 “연간 1500명 이하로 합격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로스쿨 졸업자에게 사실상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는 자격시험화가 시급하다”고 맞선다. ‘너무 많다’와 ‘너무 적다’가 맞부딪치는 이 공방은 로스쿨 도입 때부터 17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로스쿨 제도 설계에 관여한 전직 법무부 관료는 “변호사 4만 명이면 법조 기득권을 깨겠다는 당초 도입 취지는 달성했다고 본다”며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 선발 방식 바꿔야 하나
지난해 변호사시험에 다섯 번째로 낙방한 지방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A씨는 한 로펌에서 월 300만원을 받으며 사무직으로 일한다.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5년 안에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응시 자격마저 잃은, 이른바 ‘오탈자’ 신세가 된 것이다. 사무직이지만 기초 서면 작성까지 맡는다. 보통 신입 변호사(어쏘시에이트)가 월 30건을 처리할 때 그에겐 70건이 배당된다. A씨는 “오탈자는 갈 데가 없다는 걸 알고 착취를 당하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2000명 넘어선 ‘변시 낭인’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 같은 오탈자는 지난해 기준 누적 1918명이다. 매년 200여 명이 불어나는 추세로, 이번 15회 변시 탈락자 1650명 중 5회 응시 기회를 모두 소진한 인원이 더해져 올해 누적 2000명을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졸업 후 5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추가 응시 자격을 박탈한다.
사법시험 시절 무제한 응시로 발생한 ‘고시 낭인’을 막으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변시 합격률이 첫해인 2012년 87%에서 올해 50%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이제는 ‘변시 낭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오탈자 대다수는 생계 문제를 호소한다. 5년간 변시에 매달리느라 토익이나 대외활동 등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을 틈이 없었던 데다 ‘늦은 나이’까지 발목을 잡는다. 수도권 로스쿨을 졸업한 오탈자 B씨는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가까스로 30대 중반에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으로 입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오탈자 C씨는 최근 중소기업 법무팀에 입사했지만, 로스쿨 재학 시절 끌어다 쓴 금리 연 10%대 캐피털사 대출이 여전히 남아 있다.
‘패배자’라는 낙인도 이들을 옥죈다. 취업할 때 로스쿨 졸업 이력을 아예 제출하지 않는 오탈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학 전문성이라는 ‘메리트’보다 변시 불합격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D씨는 “로스쿨 재학 시절 우울증과 부모님 투병으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응시 기준을 ‘5년’이 아니라 기간 제한 없는 ‘5회’로만 바꿔도 숨통이 트이는 학생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변시 학원’ 된 로스쿨
오탈자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불운을 넘어 사회적 손실로 번지고 있다. 합격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로스쿨은 사실상 ‘변시 학원’으로 전락했다. 서울의 한 로스쿨에선 올해 1학기 국제거래법·고용평등법·법제사 등 과목이 폐강됐다. 학생들이 공법·민사법·형사법 등 변시 직결 과목에만 몰리기 때문이다. 공익 활동의 일환인 리걸클리닉(무료 법률 지원 실습 교육) 지원자는 극소수에 그쳤다. 다양한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로스쿨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오탈자 포비아’는 로스쿨 서열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수험생·재학생 커뮤니티에선 비수도권 5개 로스쿨(강원·제주·동아·원광·영남)을 묶어 ‘강제동원령’이라고 부르는 은어까지 통용된다. 고려대·연세대 로스쿨 1학년조차 서울대 진학을 위해 반수에 매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익·기업 법조 영역은 확대

변호사 공급 확대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도 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의 공공·기업 진출 비율은 13.1%에서 18.9%로 뛰었다. 2011년 570명이던 한국사내변호사회 회원은 작년 말 2800여 명으로 늘었다. 기업 내 법률 리스크 관리와 준법 경영이 자리를 잡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법조 다양화도 진전됐다. 사법시험 시절 신규 법조인의 출신 대학은 평균 40여 곳이었지만, 2024년엔 74곳으로 늘었다. 공익법단체 두루에 따르면 국선 전담 변호사는 2004년 11명에서 현재 254명으로 증가했다.
이인혁/정희원/김유진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