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의 대형 전광판에 "안녕하세요 대성입니다"라는 거대한 한글 문구가 박혔다. 영문 자막 하나 없는 이 당당한 인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화려한 무대 위 빅뱅 대성이 뿜어내는 K-트로트의 '뽕 끼' 서린 가락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춤을 추며 열광했다. '국뽕'이라는 해묵은 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장 로컬적인 정체성이 세계 무대의 중심을 관통한 순간이었다.
최근 K-컬처를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의 조심스러운 경계심을 넘어 확신에 찬 글로벌 현상으로 진입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476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K-콘텐츠의 위상과 이를 국가 경쟁력으로 치환하려는 민관의 공격적인 유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아티스트 내부에서는 여전히 '한국적 색채'의 수위를 두고 치열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이 발표한 정규 5집의 첫 번째 곡 '바디 투 바디(Body to Body)'가 대표적이다. 해당 곡 후반부 브리지 구간에 삽입된 '아리랑' 선율을 두고 멤버들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뷔는 "이 XX들 그냥 국뽕으로 가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했고, RM은 "돈가스와 식빵에 김치를 넣어 비빔밥을 해 먹는 느낌. 파리바게뜨 가서 김치볶음밥 먹는 느낌"이라고 했다.
방 의장은 앨범 제작 과정에서 아리랑 삽입을 두고 멤버들에게 "여러분이 외국 어느 나라 사람인데, 자기 나라 출신의 슈퍼스타가 자기 나라 민요를 세계인들 앞에서 불렀을 때 소름 돋는 감동을 느끼지 않겠는가"라고 설득했다. 또 "여러 인종의 사람이 모여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은 아이코닉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앨범이 공개된 후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은 지난 3월 30일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하더니 한 달째 상위권을 지켰다. 방 의장은 "나중에 미팅에서 멤버들도 '국뽕 마케팅으로 보일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주변에서 백이면 백 소름 돋고 감동이라고 하더라. 이번에도 형이 맞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 '국뽕' 비하는 이제 그만 "낡은 개념"
업계에 따르면 흥미로운 지점은 이 같은 내부의 우려와 일부 대중의 "촌스럽다"는 불호 반응까지도 기획사의 고도화된 전략 안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한 뒤,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방식이다.이는 K팝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팬들이 아티스트의 '뿌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K컬처와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해외 팬들은 그 매력의 근원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며 "아티스트로서도 단순히 개인의 성공이나 명성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라는 사회와 국가, 공동체에 대한 의식을 명확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BTS의 '아리랑' 삽입을 두고 국뽕 논란을 벌이고 있는데, 이미 몇 년 전부터 업계에서 잘 쓰지 않는 낡은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적인 색채에 유독 인색한 국내 일각의 시선에 대해 한 엔터사 관계자는 "어느 나라도 자국의 문화를 이야기한다고 '국뽕'이라고 비하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며 입을 뗐다. 그는 "정작 외국에서는 한국 문화의 고유한 미학에 열광하고 이를 존중하는데, 유독 국내에서만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티스트가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창작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촌스러운 애국 마케팅'으로 치부하는 해묵은 관념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김 평론가는 "영국의 '브리티시팝'을 두고 아무도 국뽕이라고 비난하지 않듯, 우리도 이제는 이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한국은 미국처럼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갖춘 나라가 아니기에 한정된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수익과 관광 효과가 전방위로 퍼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글로벌 팬은 힙합, 남미 음악, 국악이 복합적으로 압축된 K팝 안에서 여러 요소를 탐색하고 디코드(해독)하며 즐긴다"며 "K팝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전통문화와 국악 요소가 그 즐거움의 핵심적인 한 축으로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라고 전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