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가장 큰 레버리지를 가진 시점이었는데도 그 재앙적인 합의가 거대한 테러 정권에 (…)수십억 달러를 퍼주었다. 그 독재자가 핵 탑재 가능한 미사일을 만들고, 테러를 지원하고, 중동 전역과 그 너머에까지 혼란을 일으키도록 허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이란 핵 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헬렌 톰슨의 ‘질서 없음’).
미국·이란·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이 참여해 도출된 JCPOA의 주요 내용은 △15년간 농축우라늄 보유량 1만kg에서 300kg으로 감축 △농축도 3.67% 이하로 제한 △원심분리기 1만9000개에서 6104개로 감축 △15년간 포르도 핵시설에 핵분열 물질 반입 금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25년간 사찰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 금지 등이다. 대신 국제사회는 이란에 가해졌던 제재를 풀어주기로 했다.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JCPOA에서 탈퇴하면서 이란 핵문제는 원 위치로 돌아갔다. 이란은 핵농축 시설을 다시 돌렸고 60% 농축 우라늄 460kg을 확보했다. 핵무기 11기 제조 분량이다. 농축도를 핵무기로 쓰이는 90%로 끌어올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다급해진 미국은 2025년 6월 이란 핵시설들을 폭격했고 파괴되지 않은 시설이 있다고 보고 이란전을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 트럼프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불신’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트럼프는 “미친 사람들이 핵무기를 가지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말 속에 그 의미가 함축돼 있다. JCPOA에 농축 권한 인정, 15년 시한, 핵물질과 원심분리기 존치 내용이 담겨 있어 면적이 넓고 험준한 산악 지대가 많은 이란에 언제든 비밀리에 핵을 개발할 여지를 줬다고 본다. 이 때문에 이참에 전쟁이 끝나더라도 핵 개발 후환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미국 본토 사정권 북한 ICBM에 공포
북한 사례가 교훈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동결과 경제 지원을 맞바꿨지만 북한은 지난 30여 년 끊임없는 속임수를 통해 핵무기를 갖게 됐다.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 2·13 합의, 10·3 합의 등은 핵 개발을 위한 시간벌기용에 불과했다. 핵무기를 한 번 가지면 포기한 예는 없다. 아무리 재래식 전력이 약해도 핵무기는 상대의 군사적 선택을 무력화하는 강한 억지력을 발휘하고 그 사례들은 많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에 대해 심각한 위협을 느끼는 이유다. 주한미군·주일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본토까지 북한 핵무기 사정권에 놓이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애니 제이콥슨이 쓴 ‘24분’에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미국의 공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한 평양 인근에서 쏜 ICBM(화성-17)이 24분 만에 미국으로 날아와 워싱턴은 잿더미가 된다. 알래스카 미군기지에서 요격에 나서지만 실패한다. 미국이 대량 보복에 나서면서 인류는 핵재앙을 맞는다는 시니리오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미국 서부를 강타한다. 북한 디젤 전기 잠수함이 어떻게 미국 서부 해안까지 갈 수 있느냐에 대해 저자는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저속으로 운항해 ‘스노클’ 횟수를 줄이면 발각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전기로 가동되는 디젤 잠수함은 충전을 위해 엔진을 가동을 해야 하고 공기 흡입이 필요해 물위에 떠올라야 한다. 이때 적에게 들킬 위험이 높다).
얕은 물에서 신호 반향음이 많으면 탐지가 어려워 알래스카주의 대륙붕을 따라 이동한 뒤 남쪽으로 내려가면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이 전문가의 견해다. ‘24분’의 시나리오는 최악을 상정한 것이다. 전직 국방부 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군 고위 장성, 전문가들을 대거 취재해 썼다는 점에서 비록 가상이나 실현 여부를 떠나 북한의 핵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에서도 북한발(發) 가능성이 있는 ICBM 요격에 실패하면서 미국 본토가 위협당한다. 핵으로 맞섰다간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핵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면서 우왕좌왕한다. 역시 핵억지 위력을 잘 보여준다.
세계 최강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핵미사일 요격에 실패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사일을 미사일 1발로 맞힐 확률은 대략 70~80%대다. 전파 방해, 레이저 사각, 요격 고도 등 변수에 따라 성공률은 달라질 수 있다. ‘신의 방패’라는 이스라엘 ‘아이언돔’은 2021년 가자지구 분쟁 때 95%의 성공률을 보였지만 2023년 하마스 로켓 요격 성공률은 78%에 그쳤다. 미사일·드론 벌떼 공격, 극초음속 미사일은 방어하기 더욱 어렵다.
속속 뚫린 미·이스라엘 방공망…핵이면 아찔
이번 이란전에서도 이란 미사일들이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바레인 등 방공망을 뚫고 미군기지 등에 날아들었다. 이스라엘의 ‘아인언돔’, ‘다윗의 돌팔매’ 등 겹겹의 방어망도 완벽하지 못했다는 게 다시 드러났다. 곳곳에 떨어진 미사일 가운데 단 한 방이라고 핵무기를 탑재했다면 재앙적 상황을 맞는다. 이란이 핵을 갖고 있다면 이런 위험성 때문에라도 트럼프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핵무기 위력이 이렇게 크다. 트럼프가 어떻게든 이란 핵무장을 막으려는 이유다.
이란이 핵을 갖게 되면 중동 최강자가 되고 나아가 세계 정세를 뒤흔든다. 사우디, 이집트 등으로 핵 도미노를 일으킬 수 있다.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등으로 핵물질이 이전되는 것은 미국으로선 최악 시나리오다. 중국~러시아~이란~북한, 즉 ‘CRINK’ 라인이 핵으로 연결된다면 서방이 분열된 마당에 미국 패권은 강력한 도전을 받을 것이고 글로벌 원유 공급망은 상시적 위협에 처할 수 있다.
트럼프의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와 이란전을 보면서 북한 김정은은 핵에 더 집착할 것이다. 요격이 힘든 극초음속미사일로 미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판이다. 최근 들어 단거리 미사일들을 집중 발사하고 있다. 남측과 주한·주일미군 기지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극초음속을 비롯한 다종의 북한 핵미사일과 수많은 장사정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정보 자산, 요격 대응 능력 부족 등 한계가 많은 3축체계론 완벽 방어는 어림도 없다. 핵추진잠수함 확보는 물론 자체 핵억지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
◆우라늄 농축=발전용 또는 핵무기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우라늄-235. 자연 상태의 우라늄-235 비율은 0.7%에 불과하다. 원자력발전에 활용하려면 우라늄-235 비율을 3~5%로 높여야 한다(저농축). 핵무기용으론 90% 이상으로 농축해야 한다(고농축). 원자력추진잠수함 원료로는 저농축~고농축 모두 사용된다.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우라늄 농축을 20% 미만만 할 수 있다. 그것도 양국 협의를 거쳐야 하나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농축권이 없는 셈이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239를 핵무기 원료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 역시 한국은 할 수 없다.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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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CRINK’ 라인이 핵으로 연결되면 서방 분열된 마당에 미국 패권에 강력한 도전. 이란전으로 김정은 핵 더 집착 … 3축체계로는 완벽한 방어 어려워. 핵억지력 키워나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