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엘레멘트컴퍼니, 워라밸 대신 '성장의 감각'을 선택한 사람들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엘레멘트컴퍼니, 워라밸 대신 '성장의 감각'을 선택한 사람들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이름을 짓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 브랜드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시장을 읽고, 언어를 다루고,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쯤 빠져도 그럴듯한 결과물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럴듯한 것과 정확한 것은 다르다. 브랜딩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엘레멘트컴퍼니는 분명한 색을 지닌 조직이다. 영국 WBDS 네이밍 어워드를 수상했고, iF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등 글로벌 무대에서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대표의 이력도 특이하다. 최장순 대표는 언어학을 전공했고, 신문기자 출신에, 베스트셀러 '기획자의 습관'을 쓰기도 했다. 고려대학교에서 응용기호학을 가르치며, 국내외 학술대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비즈니스 휴머니스트’라 부른다. 인테리어, 디자인, AI, 인문학, 기호학, 브랜드 전략과 광고를 한 지붕 아래 두고 움직이는 이 조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졌다. 구성원들을 만나 일, 성장,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일이 힘든 건 당연하다. 진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왔다.

    엘레멘트컴퍼니는 전략팀과 경험팀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전략팀은 브랜드의 본질과 언어를 설계하고, 경험팀은 그것이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기획과 디자인으로 번역한다. 브랜드의 철학과 전략, 서사를 만들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이 이 조직의 일이다.


    권영균 전략팀 팀장은 조직의 작업 방식에 대해 “모든 에이전시가 3C 분석을 하지만, 저희는 표면 이면에 뭐가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인문학적인 관찰과 조사를 더 깊게 합니다. 소비자의 내면, 실제 행동, 사회 트렌드와 그 배경, 소비자의 심리까지 다 파악하죠.” 로직이 정교해지는 비결에 대해서는 “단순히 결과만 도출하는 게 아니라 모든 순간에서 ‘왜(Why)’에 대한 질문을 채워갑니다. 그 Y를 끝까지 찾아다니다 보니 시간을 많이 쓰지만, 그 과정을 통해 로직이 탄탄하고 이해하기 쉬워지죠”라고 덧붙였다.

    전략팀의 업무가 마무리되면, 경험팀이 투입된다. 박지혜 경험팀 팀장은 두 팀 사이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현실적 제약을 이렇게 짚었다. “전략팀의 가치 플랫폼은 수개월의 노고가 쌓인 압축된 결과물인데, 그게 디자이너들이 쓰는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채 공유되는 경우가 있어요. 전략의 언어와 경험의 언어를 맞추는 브릿지가 필요합니다. 그 중간에서 치열하게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디자이너들이 시각적 상상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어요.”

    전략적 사고를 중시하는 회사의 지향점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프로젝트 진행 방식에 당황하기도 한다. “다른 회사에서는 전략가가 도출한 코어 밸류를 디자이너가 시각화하는데 그치는 반면, 우리 회사는 디자이너도 인사이트를 깊게 파악하고 해석해내야 해요. 그러다 보니 부담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황의성 책임)

    비교적 연차가 낮은 구성원들은 높은 업무 강도에 대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김영재 경험팀 매니저는 “업무 강도는 전략팀에서 일정이 넘어오는 타이밍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시즌이 되면 많이 힘이 듭니다”라고 했고, 이지호 전략팀 매니저는 “워라밸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두면 분명 쉽지 않은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두 사람 모두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이유가 있었다.


    김영재 매니저는 “프로젝트 규모가 크고 매력적이에요. 대표님의 인사이트나 동료들에게서 얻어가는 것도 많고요. 그런 게 있어서 계속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이지호 매니저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인 것 같아요. 워크와 라이프를 딱 분절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저도 그런 것 같고요. 회사의 비전과 철학, 비즈니스 휴머니스트로서의 관점에 공감하고, 그 방향으로 같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 성장통


    지난해 엘레멘트컴퍼니는 조직 혁신을 위한 재정비의 시간을 보냈다. 인력을 조정해 현재는 19명의 소수 정예 체제로 운영된다. 외형보다 밀도와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열을 정비했다는 설명이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느슨하게 운영되던 근태 기준과 업무 체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 필요했고, 그 변화는 몇몇 구성원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높은 업무 강도에 엄격한 시스템이 더해지자,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떠난 이들도 있었다.



    “초기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문화가 있었어요. 하지만, 너무 느슨하게 운영되면서 컨설팅 프로젝트를 제외한 회사의 성장을 위한 모든 일이 등한시됐죠. 근태, 내부 보고체계 등 느슨하게 운영되던 부분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외 수당 등 제도도 함께 도입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여러 변화가 한번에 이뤄지다 보니 어려움도 분명 있었죠.” 노지훈 부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이 과정의 필연성에 대해 “지반이 단단해야 좋은 나무와 좋은 열매, 좋은 숲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반이 약하면 거기에는 어떤 것도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원칙 없이 기준 없이 해버리면 동료들도 여기에 뿌리 내리기가 너무 어려운 거죠”라고 정리했다.

    “분명 어려운 시기가 있었어요. 더 분명한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낯설어하거나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단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만은 아니었어요. 실무 기준을 명확히 하면서 보상과 운영 방식도 함께 손보는 변화였고, 지금은 그 조정을 지나 보다 안정적인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박지혜 팀장)

    모든 조직은 성장통을 겪는다. 엘레멘트컴퍼니도 분명 그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남은 직원들은 울퉁불퉁한 성장통을 감수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 단단한 연구 공동체

    밀도와 전문성을 강화해 전문가로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방향은 ‘연구공동체’다. 실제로 이 회사는 월요일 전체 업무 회의를 마치고 월 1-2회 최 대표의 인사이트 강연이 진행된다. 인문학, 브랜드, 트렌드, 현상 등 경계를 넘나드는 이론과 사례를 공유한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점심을 먹으며 실무진끼리 1시간 동안 인사이트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크런치(Creative Lunch) 시간을 갖는다. 크런치에 참여하는 동료들에겐 빅맥버거가 제공된다.

    조직 안에서 ‘공부’는 빠지지 않는 키워드다. 전략팀을 중심으로 인문학, 경영학, 기호학 스터디가 이어져 왔고, 프로젝트에 필요한 개념과 이론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방식이 일의 일부로 기능해왔다. 세계적인 기술철학자 파스칼 라르들리에, 세계적 기호학자인 김성도 고려대 교수, 이탈리아의 마시모 레오네 교수 등 석학들의 강연과 자문을 받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해외 학술대회 발표 기회까지 만들 정도로 학문적 활동에 진심이다. 최 대표는 런던 한류 축제 초청 UCL 강연, 이탈리아 공동 기호학 세미나 진행 등 이론과 실천을 융합하는 연구공동체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올해엔 인도에서 개최될 세계아시아기호학회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다.

    성장의 방향은 사람만이 아니라 도구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브랜딩과 디자인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점은 엘레멘트컴퍼니가 최근 가장 주목하는 변수 중 하나다. 생성형 AI의 확산 이후 전략과 디자인, 제작의 경계가 달라지면서, 조직 역시 실무 방식과 역할 구조를 다시 정비하는 중이다. 한형민 이사는 이 변화를 위협이 아닌 재편의 기회로 읽는다. “AI는 그래픽이나 패턴 발견에는 확실히 강점이 있어요. 하지만 브랜드에서 파생된 디자인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한계가 있고, 그 간극은 결국 해석 역량을 가진 사람이 메워야 합니다. 디자이너도 두 부류로 양분될 것 같아요. 한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와, 전체를 조망하며 브랜드 차원에서 해석하고 기획하는 브랜드 전략가. 그 중간에 애매한 포지션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겠죠.”

    황의성 책임은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를 이렇게 전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지만,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단편적인 것들을 모아 제공하는 수준이에요. 반드시 크로스체크가 필요하고, 그걸 일반화해서 받아들이면 우리가 하는 업에서 정말 안 좋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답답한 건, 이해관계자 정보와 산업 맥락을 종합해서 최적의 솔루션을 내야 하는 컨설팅 업에서, 파편적인 AI 아웃풋만 가져오는 경우예요. AI가 있으면 시간이 절약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복 작업이 늘어나는 역설이 생기죠.”

    올해부터 엘레멘트컴퍼니는 브랜드 경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광고 제작도 시작했다. 최근 글로벌 우버(Uber) 캠페인 등을 디렉팅해온 엄한나 수석이 합류해 NH투자증권 N2 IMA1 상품의 티저 광고를 선보였다. 해당 상품은 출시 일주일 만에 4000억원이 모집돼 완판됐다.

    엄 수석은 외부에서 바라본 엘레멘트컴퍼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에이전시에 있을 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라는 반응을 들을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엘레멘트컴퍼니는 깊게 파고드는 태도의 귀함을 아는 회사인 것 같아요. 그런 DNA가 대표님 마인드에서부터 계승되어 내려오고 있고, 조직 전반에 더 뿌리내려야 할 필요는 있지만, 연속성은 느껴집니다.”

    기업 현장에서 마케팅 디자인을 전개해온 최상철 책임은 높은 업무 강도를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일을 하는 데 있어 감정을 너무 개입시키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믿고 의뢰한 프로젝트라는 책임감으로 임하고, 그 디자인이 업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걸 볼 때 보람이 옵니다. 2, 3년 지난 프로젝트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개선했는지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의 엘레멘트컴퍼니는 외형 확대보다 조직의 밀도를 다지고 있다. 현상과 이슈를 보다 정교하게 정의하고, 문제 해결방안을 현실성 있게 번역하며, 새로운 경험 캠페인으로 더 넓은 시장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높은 업무 강도와 노동시간은 숙제로 남아 있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단순 브랜딩을 넘어 비즈니스 깊숙한 문제까지 솔루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원래 회사 초기에는 주 4일제 근무를 했어요. 하지만, 프로젝트 퀄리티에 대한 열정과 공부가 전제돼야 주 4일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변화하는 시장에 매번 새로운 인사이트와 창의성을 더하려면 결국 시간을 들여야 하거든요. 종종 대표님은 주 3일제도 이야기하세요. 이상적이죠. 하지만 현실은 기업들이 점점 더 높은 결과를 요구하고 있어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죠.” (노지훈 부대표)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노동시간이 늘어야만 하는 걸까. 모두가 워라밸을 외치는 시대,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일하는 이들, 인문학과 브랜딩의 융합을 시도하는 비즈니스 휴머니스트. 이 실험은 어디까지 지속될까. 여러 궁금증 가운데, 엄 수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AI가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저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들을 굳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가장 인간다운 일이고 더 나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엘레멘트컴퍼니는 더 이상 생각을 깊게 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가장 생각을 많이 하는 회사인 것 같습니다.” (엄한나 수석)

    그리고 주니어의 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는 분명히 느끼고 있어요.” (이지호 매니저)

    김성혜 한경닷컴 기자 shkimmy@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