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총으로 생포…건강 양호

대전시에 따르면 수색당국은 탈출 10일째인 이날 0시44분께 대전 안영동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안영나들목 인근에서 늑구를 포획했다. 전날 오후 5시30분께 침산동 뿌리공원 인근에서 늑대를 발견했다는 제보를 받고 일대를 수색하다가 오후 11시45분께 늑구를 발견해 포획 작전에 들어갔다. 수색 관계자들은 늑구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기 위해 수의사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조심스레 관찰하며 동태를 살폈다. 수의사가 도착한 뒤 늑구에게 접근, 마취총을 발사해 생포했다. 지난 8일 오전 9시께 대전 오월드 사파리 철조망 밑 땅을 파고 탈출한 지 9일 만이다.
늑구는 초기 진료를 받은 결과 건강은 비교적 양호한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엑스레이상 위에서 길이 2.6㎝ 낚싯바늘이 발견돼 내시경으로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대전시는 늑구가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먹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례적 인기에 ‘늑구 맵·굿즈’ 등장
늑구는 탈출한 기간 동안 이례적인 팬덤을 형성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발적 수색대가 꾸려졌고, 늑구 위치를 공유하는 ‘어디가니 늑구맵’ 사이트까지 등장하는 등 추적 과정 자체가 하나의 참여형 콘텐츠로 퍼져나갔다. 직장인 정모씨(32)는 “회사에서도 계속 늑구 소식을 검색하는 등 관심을 두고 살펴봤다”며 “포획됐지만 한동안은 잡히지 않고 더 멀리 달아났으면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포획망을 잇달아 벗어나는 모습은 ‘자유의 상징’ ‘탈출의 달인’ 등으로 재해석돼 온라인에서 밈으로 확산했다. 이를 바탕으로 늑구 밈 코인까지 등장하는 등 2차 콘텐츠 생산이 이어졌다. 해외 일부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는 코인 ‘Neukgu(늑구)’가 유통됐다. 이 같은 흐름 속에 늑구를 소재로 한 굿즈 제작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늑구 캐릭터를 활용한 마스코트 도입이나 ‘발바닥 빵’ ‘귀환 기념 티셔츠’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됐다. 이에 대전관광공사는 다음주 유관 기업과 만나 상품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감정 투사”
이번 늑구 탈출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대중의 관심을 끌 구조적 조건을 갖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명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포위망을 반복적으로 벗어나는 과정이 추격과 도주의 구도를 형성해 대중이 일종의 탈주극을 관람하는 효과를 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과 실시간 정보 확산이 결합해 서사적 긴장감을 키웠다. 2023년 3월 세 시간 만에 붙잡힌 얼룩말 ‘세로’나 2018년 오월드를 탈출해 4시간30분 만에 사살된 퓨마 ‘뽀롱이’와 달리 장기간 지속된 추적이 국민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빠삐용’ 같은 서사가 더해지며 늑구 응원 심리가 고조됐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민이 사육과 통제에서 벗어나 탈출한 모습을 보며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감정을 투사하고, 그 안에서 일종의 희망을 읽어냈다”고 분석했다.늑대라는 종의 특성도 열풍을 증폭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개의 조상이라는 친숙함,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 대중문화에서 축적된 ‘자유롭고 영리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결합되며 응원 심리를 자극했다는 평가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서며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점도 한몫했다. 동물을 단순한 전시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하나의 개체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중동전쟁, 6·3 지방선거 등 국제 정세와 정치 관련 기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뉴스에 국민이 열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선주 서울디지털대 반려동물학과 교수는 “판다 ‘푸바오’가 ‘사랑받는 동물’ 서사로 동물 팬덤의 문을 열었다면 늑구는 ‘능동적 저항’으로 각박한 일상 속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했다”며 “늑구 사건이 단순한 화제로 소비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물원 제도 개선과 야생동물 복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병화/최영총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