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한국 산업계와 지역사회, 정치권은 아수라장이 됐다.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에 한국GM을 살리기 위한 고통 분담을 요구한 사실이 한국경제신문 보도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GM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다. GM은 28억달러 규모 기존 대여금을 출자 전환할 테니, 산은이 대신 ‘뉴머니’(신규 자금)를 넣으라는 청구서를 내밀었다. 정부와 산은이 지원을 거부하면 짐을 쌀 수 있다는 ‘철수설’까지 흘렸다. 석 달간 한국을 뒤흔든 ‘GM 사태’의 서막이었다.GM의 행보는 충격적이었다. 곧바로 군산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산은은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부실 규모가 크고 경영 정상화가 불투명한 기업에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게 맞냐는 갑론을박에 시달렸다. 장고를 거듭하던 산은은 결국 약 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한국GM 부평·창원공장에 딸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적자금을 넣기로 한 것이다. ‘비용(자금 지원) 대비 사회적 편익(일자리 유지 등)이 크면 자금을 투입한다’는 이른바 가성비론에 기댄 판단이었다. 뉴머니를 받아든 GM은 이후 10년간 한국GM 최대주주로 남아 있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GM 사태는 일단락됐다.
8년이 지난 뒤 놀라운 뉴스가 다시 한경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망할 뻔한 한국GM이 주주들에게 3조원 안팎의 중간배당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작년 말 기준 한국GM에 3조1091억원의 순현금이 쌓인 만큼 주주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정이었다. 2014년 이후 11년 만의 배당이다. 지분 76.96%를 보유한 미국 GM뿐 아니라 17.02%를 가진 산은도 배당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GM의 이번 배당은 단순한 주주 환원이 아니다. 정부와 산은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살려낸 자동차회사가 이제는 배당에 나설 만큼 단단해졌다는 의미다. GM이 설비 현대화 등에 6억달러를 새로 투자한다고 밝힌 만큼 ‘GM 철수설’이 사그라들 것이란 기대도 커졌다.
그런데 마냥 박수만 치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은 대목도 있다. 이번 배당으로 산은은 수천억원대 배당을 받아 공적자금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뉴머니를 투입한 산은의 결정이 어느 정도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미국 GM으로 ‘조 단위’ 현금이 빠져나간다. 가까스로 회사가 살아났지만 한국GM의 보유 현금 대부분을 당장 본사로 보내는 ‘배당 잔치’를 벌이는 게 맞냐는 질문이 남는다. 국민 세금이 쓰이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협력사를 포함해 1만여 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은 기억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공적자금 투입 기업에 대한 명확한 배당 가이드라인이 없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와 산은은 외국인 투자 기업 차별, 미국과의 통상 마찰 등을 우려해 이번 배당에 개입하진 않았다. 물론 배당 자체를 막을 순 없다. 그러나 최소한 공적자금 회수율과 중장기 고용, 투자, 지분 유지 계획 등과 연계한 배당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정부와 산은은 이번 기회에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GM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한국GM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중장기 투자 계획을 확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와 산은 그리고 정치권은 2028년 이후를 대비한 새로운 ‘가성비론’을 준비해야 한다. GM은 언제든 한국을 떠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