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가 KT와 손잡고 정보보안 인력 양성 대학원 과정 신설을 추진한다. 신설 대학원은 KT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재교육형 계약학과로 출발해 향후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난해 KT 보안 사고를 계기로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잇따른 보안 사고에 계약학과 추진
16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대는 최근 KT와 함께 계약학과 형태의 정보보안대학원 설립을 위해 담당 교원 후보군과 커리큘럼 초안을 마련하는 등 밑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대가 대기업과 재교육형 계약학과를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 재교육형 계약학과는 2013년 대검찰청과 디지털 포렌식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수리정보과 학과 등 총 8개가 있지만 대부분 공공기관과 맺는 형태다.수업을 맡는 교수진은 전기정보공학부, 컴퓨터공학부 등의 교수들로 구성될 전망이다. 커리큘럼은 기업 맞춤형으로 설계해 지난 3월 서울대가 신설한 보안 인력 양성 프로그램인 정보보호 협동과정과 병립해 운영해나갈 방침이다. 서울대 정보보호 협동과정은 수리과학부를 중심으로 공대, 법학전문대학원, 사회과학대학 등 8개 단과대가 참여해 암호, 프라이버시 강화기술(PET), 정보보안, 사이버범죄 예방 등을 교육하는 과정이다.

이번 계약학과 설립은 지난해 8월 벌어진 KT 고객 무단 소액결제 침해 사고 직후 보안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자는 KT 측의 제안에 따라 추진되기 시작했다. KT는 사고 이후 보안 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그간 정보기술(IT)과 네트워크 등에 분산돼 있던 보안 기능을 '정보보안실'로 통합해 보안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옥경화 최고정보기술책임자(CIO)와 이상운 정보보안실장(CISO) 등을 선임하며 보안 체계를 정비해나가는 중이다.
KT도 보안 인력 양성을 놓고 국내 대학과 협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KT는 포스텍, 카이스트 등과 AI 인력 채용 연계형 석사과정을 2022년부터 운영해 왔지만 보안 인재 양성 프로그램은 별도로 없었다.

민간에서도 계속 해킹피해가 늘어나면서 관련 인력 양성에 대한 니즈는 커진 상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민간기업 대상 사이버 해킹 침해사고는 2021년 640건에서 2024년 1887건으로 3년 만에 약 3배로 늘었다. 피해 유형별로 보면 시스템 해킹은 2021년 283건에서 2024년 1373건으로, 분산서비스거부(DDOS·디도스) 공격은 같은 기간 123건에서 285건으로 증가했다. 개인정보 유출 신고 건수도 2021년 163건, 2022년 167건, 2023년 318건, 2024년 307건으로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구체적인 수업 기간과 운영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통상 대학원 기준으로 석사과정은 2년, 박사과정은 수업 2년에 학위 과정 3년을 더해 총 5년가량이 걸리지만, 이번 과정이 정확히 어떤 틀을 따를지는 KT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될 전망이다. 기존 안대로라면 내년 1학기 시작 가능성이 크다.
기존 인력 재교육으로 시작해 향후 채용조건형 확대 검토
서울대와 KT의 협력은 사내 보안 전문가 양성을 넘어 화이트 해커 양성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토대가 될 전망이다. 정부 정책에 맞춰 보안 인력 양성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범정부 정보보호 종합대책에서 최고 수준의 화이트해커를 연 500명 양성하는 체계를 기업 수요에 맞춰 설계하기로 했다.이번 KT 협력은 상황에 따라 채용 조건형으로 나아갈 수 있을 전망이다. 통상 계약학과는 산학협력법 등에 따라 채용조건형과 재교육형으로 구분된다. 앞서 서울대는 2023년 현대차와 협력해 교내 첫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인 미래자동차모빌리티학과를 신설했다. 입학생들은 2년간 석사과정을 마친 뒤 현대차 연구소에 입사한다. 이번 KT 협력은 우선 기존 KT 인력 재교육형으로 출발한 뒤 성과와 협의 결과에 따라 향후 채용조건형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서울대 안팎에서는 이번 KT 협력이 보안 분야 산학 협력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는 지난 1월 LG전자와 함께 교내에 시큐어드AI 센터를 설립했다. LG전자가 3년간 30억 원을 투자하는 이곳에는 인력 양성 기능은 없지만 서울대 교수진 10명과 연구원 30여 명이 참여해 대규모언어모델(LLM) 에이전트 보안 강화, 데이터 유출 방지 등 안전한 AI 생태계 구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 KT 협력까지 현실화하면 서울대의 보안 분야 산학 협력은 연구를 넘어 인재 양성 체계로까지 확장될 전망이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국내 보안 역량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AI에이전트가 개인 이력과 각종 데이터를 다루는 시대에는 프라이버시와 안전 문제가 훨씬 중요해진다"며 "피지컬 AI 등 새로운 유형의 AI가 등장하는 만큼 신규 고급 보안 인력을 대거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