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최근 모집한 4000억원 규모 IMA 1호 상품을 이틀 만에 완판했다. IMA는 증권사가 고객 자금을 기업금융, 회사채, 대체투자 등에 투입해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NH투자증권은 기준수익률이 연 4%로 예금보다 높고, 원금이 보장돼 투자자가 몰렸다. 앞서 한국투자증권은 1~4호 IMA를 통해 2조5000억원을 모집했고, 미래에셋은 2000억원 규모 1~2호 상품을 전량 판매했다.
연 3%대 금리를 보장하는 발행어음도 규모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7개 증권사의 발행어음 잔액은 지난 1분기 말 기준 약 54조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분기 42조7795억원에 비해 21.5% 증가했다. 증권사들이 IMA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본은 57조원이 넘는다.
금융당국은 IMA와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의 25%를 모험자본 투자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10대 증권사의 자기자본과 조달 가능 금액을 고려하면 최대 44조원의 모험자본이 공급될 수 있는 셈이다.
증권사, 2년 후 조달액 25% 이상…신생기업 육성에 의무 투자해야
초기 투자 VC·사모펀드 담당…외형 성장은 증권사가 맡을 듯
오는 6월 미국 증시 상장을 앞둔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는 모험자본 투자가 결실을 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수차례의 로켓 폭발에도 인내자본(초기 투자자)은 굳건히 유지됐고, 기술 실증에 성공하자 대규모 투자가 이어져 ‘스타링크’ 생태계가 갖춰졌다.초기 투자 VC·사모펀드 담당…외형 성장은 증권사가 맡을 듯
작년부터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생산적 금융’은 모험자본 투자를 통해 ‘한국판 스페이스X’를 만들기 위한 시도다. 특히 증권사가 대규모로 자본을 조달할 창구를 열어주면서 은행이 하기 어려운 공격적인 투자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대 44조원 모험자본 투자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자기자본이 4조원 이상인 7개 증권사가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은 13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 두 가지 수단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3개 회사는 자기자본의 300%인 약 90조원까지 조달할 수 있고, 발행어음 인가만 받은 KB증권, 하나증권, 키움증권, 신한투자증권 등은 200%에 해당하는 49조원가량을 마련할 수 있다.발행어음 사업자 인가 심사 중인 삼성증권과 발행 요건을 웃도는 자기자본을 쌓은 메리츠증권, 대신증권까지 추가된다면 최대 조달 금액은 약 178조원으로 늘어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IMA와 발행어음으로 자본을 조달하면 모험자본에 투자할 의무가 부여된다. 올해는 조달 금액의 10%, 내년엔 20%, 2028년 이후엔 25% 이상이다. 3개 회사가 추가로 인가받으면 모험자본 투자액은 최대 44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증권사가 신생기업 육성을 위한 모험자본을 대거 공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까지 IMA를 통해 증권사들이 조달한 금액은 한투 2조5000억원, 미래에셋 2000억원, NH투자증권 4000억원 등 3조1000억원 정도다. 7개 증권사의 발행어음 잔액 54조원을 더하면 약 57조원에 이른다. 7개 증권사는 금융위에 2028년까지 22조5000억원을 모험자본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VC는 초기 투자·증권사는 ‘스케일업’
증권사가 목표치로 제시한 22조5000억원의 모험자본 투자액은 지난해 벤처기업에 투자된 총금액을 웃도는 수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기업 투자액은 13조6244억원이었다.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모험자본의 범위는 중소·중견·벤처기업이 발행한 증권 및 이에 대한 대출채권, A등급 이하 채무증권(대기업 계열사 제외), 신보·기보 보증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모태펀드·코스닥벤처펀드·하이일드펀드·소부장펀드에 대한 출자지분 및 대출채권, 국민성장펀드의 첨단전략산업기금,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에 대한 투자 등이다.
증권사의 모험자본 투자는 주로 스케일업 단계에서 대규모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조달 자금이 원금 보장형 상품이기 때문에 100% 손실이 가능한 초기 투자에는 활용하기 쉽지 않아서다. 금융당국은 IMA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금액의 25%를 모험자본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IMA 및 발행어음과 관련 없는 증권사의 다른 계정에서 투자하면 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초기 투자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모험자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부문을 우선 찾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기 투자는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 등이 담당하고 증권사는 사업성을 인정받은 이후 스케일업 단계 등에서 최대한 안전한 모험자본을 찾아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이스X 역시 초기엔 일론 머스크와 파운더스펀드 등 VC가 인내자본 역할을 했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기술을 검증받은 이후 대규모 모험자본 투자가 현실화했다. 미래에셋이 진입한 것도 19억달러의 대규모 스케일업 투자가 있었던 ‘시리즈J’ 단계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