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선에 육박하면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고유가는 에너지 대전환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산업연구원(KIET)은 "고유가 국면은 재생에너지로의 빠른 전환을 가로막는 '구조적 덫'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12일 발표했다. 기름값이 오르면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을 불러와, 자본 조달 비용에 민감한 재생에너지 투자부터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리가 2% 오르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은 가스보다 두 배 가까운 20%나 치솟는 것으로 분석됐다.
단순히 돈 문제만이 아니다. 중동 전쟁으로 화석연료 공급이 불안해지자 대체재인 재생에너지를 찾게 되지만, 막상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니 인공지능(AI)발 전력난과 핵심 광물 공급망이라는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히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AI 투자 경쟁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하자,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전력망 연결이 느린 재생에너지 대신 화력 발전량 상한 해제 같은 화석연료 회귀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태양광·배터리 등에 필요한 핵심 광물의 90% 가까이를 쥐고 있는 중국의 '광물 무기화' 리스크까지 더해지며, 화석연료라는 '연료 집약' 시스템에서 핵심 광물이라는 '광물 집약' 시스템으로 병목 현상만 옮겨가는 모양새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지금까지의 재생에너지 확대가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한 게 아니라, 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그냥 하나 더 얹은 '에너지 추가(Energy Addition)'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2024년에 풍력·태양광 사용이 역대 최대였지만 석유·석탄 소비도 동시에 사상 최대를 찍은 게 그 증거다.
진짜 '에너지 전환'을 하려면 단순히 재생에너지를 더 짓는 걸 넘어 건물·산업 효율 강화와 탄소가격 설정 등을 통해 화석연료 수요 자체를 깎아내는 '다이어트'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유미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재생에너지가 자원 무기화될 수 없는 자립형 안보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전환 과정에서의 수급 불균형과 가격 급등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의 안정성도 당분간 병행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선 차액결제계약(CfD) 같은 장기 고정가격 제도로 투자 안정성을 확보하고, 자원 외교를 통해 특정국에 쏠린 광물 공급망을 다각화하는 등 현실적이고 균형감 있는 전략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