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갑지 않은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고유가, 고금리, 고환율. 이른바 ‘3고(高)’ 현상이다. 2022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3고 시대가 열릴 조짐이다. 미국과 이란의 일시 휴전으로 유가 급등세는 잠시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지만 ‘통행료 폭탄’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며 에너지 비용을 압박하고 있다.
고유가는 고물가를 낳고 치솟은 물가는 결국 금리를 끌어올린다. 미국의 금리는 한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 금리 차,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까지 더해지며 달러화는 강세를 띠고 있다. 고유가·고물가·고금리에 고환율까지 더해진 ‘사중고’가 우리 경제를 짓누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3고 현상의 현실화는 글로벌 성장 전망을 약화시키고 국내 증시의 투자 난이도를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려운 매크로 환경 속에서도 차별적인 모멘텀을 보유한 산업은 반드시 있다.

고유가
“70달러 시대는 잊어라”…호르무즈 ATM 등장
“앞으로 1~2년 내에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선 아래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경고는 단호하다. 에너지 시장 가격이 전쟁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뉴 노멀’이 도래했으며 과거의 저유가 시대로 돌아가는 문은 닫혔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이다.“70달러 시대는 잊어라”…호르무즈 ATM 등장
지난 4월 7일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배럴당 11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는 90달러 선으로 급락했다. 시장은 즉각 환호했지만 전문가들은 냉담했다. 물리적인 공급 병목 현상은 이제 막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해서 멈춰 선 원유가 즉시 시장에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은 거대한 물리적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단기적으로는 전쟁을 피해 수천 마일 밖으로 흩어진 초대형유조선(VLCC)들이 걸프 지역으로 복귀하는 데만 수주가 소요된다.

더 큰 문제는 파괴된 시설의 복구다. 카타르의 LNG 생산 허브와 쿠웨이트의 정유 시설 등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분석 기관 우드매켄지는 이 시설들을 전쟁 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최소 3년에서 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윌리 월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사무총장 역시 “해협이 개방되더라도 중동 내 정유 능력의 혼란으로 인해 공급 체계가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지난 한 달간 세계 시장에서 증발한 원유의 양은 압도적이다. 데이터 분석업체 케플러(Kpler)에 따르면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등 주요 6개국의 수출량은 한 달 만에 44% 급감했다. 이는 에펠탑 높이에 달하는 초대형유조선 103척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막대한 물량이다. 분석가들은 오는 5월과 6월 전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 압박이 극에 달하며 가격이 다시 요동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수급 불균형보다 더 뼈아픈 대목은 유가에 ‘지정학적 통행료’가 고착화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배럴당 1달러의 통행료를 암호화폐로 징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마저 이를 수익모델로 바라보며 “이란과 통행료 공동 사업(Joint Venture)을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번 합의로 양측 모두 “큰돈을 벌 것(Big money will be made)”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란 타스님통신 또한 호르무즈해협을 이란의 ‘새로운 ATM’으로 만든 것을 이번 전쟁의 주요 성과로 자찬하고 있다.
본래 국제법상 호르무즈해협은 모든 선박이 사전 허가 없이 자유롭게 지날 수 있는 ‘통과통항권’이 적용되는 곳이다. 그러나 미·이란 양국의 이해관계 속에 통행세가 기정사실화된다면 과거 ‘무료’였던 바닷길에 붙은 이 비용은 향후 유가의 하방 지지선을 높이는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해운 업계의 심리적 위축 또한 가격 하락을 가로막는 요소다. 해운 분석가들은 선사들이 위험 항로로 복귀할 확신을 얻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실제 홍해 사태 당시에도 후티 반군이 공격 중단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상업 선박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예측 가능한 희망봉 우회 경로를 택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는 상시적인 ‘안보 프리미엄’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올해 브렌트유 전망치를 78달러에서 96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역시 시설 복구 지연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할 때 전쟁 전 수준인 60달러대 회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냉정한 분석을 내놓았다.
(박스) 증권가 투자 tip
고유가가 장기화되면 생산 비용 증가로 업종 대부분의 펀더멘털이 약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 같은 환경 변화가 옥석 가리기의 강력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먼저 한국투자증권은 거시경제 환경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버티는 힘은 결국 기업 실적에서 나온다고 진단한다. 김대준 애널리스트는 악조건 속에서도 모든 업종의 이익이 꺾이는 것은 아니며 비용 부담을 스스로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갖춘 반도체, 기계, 조선, 가전 등의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하나증권은 국제유가(WTI)의 가격대별로 주가수익률이 우수했던 업종을 세분화해 제시했다. 이재만 애널리스트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수준의 고점권에 머물 때는 수주 모멘텀이 살아 있는 조선과 기계 등 산업재 섹터의 성과가 좋았다. 반면 유가가 80달러 선으로 안착할 경우 운송, 자동차, 2차전지, 철강, 화학 등 소재 및 소비재 섹터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부각됐다. 유가가 100달러를 상회할 경우 기업의 영업이익률 하락 우려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돼 업종 선별이 매우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삼성증권은 이번 고유가 충격을 에너지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로 해석했다. 김종민 애널리스트는 고유가 상황이 전 세계적인 에너지 자립 투자를 앞당기는 강력한 트리거가 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자립을 위한 투자 확대 과정에서 구조적 성장이 담보된 2차전지와 신재생에너지 업종을 투자 포트폴리오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환율
환율 전망치 상향…일상으로 배달된 전쟁 청구서
환율 전망치 상향…일상으로 배달된 전쟁 청구서
이란 전쟁 리스크가 정점에 달했을 당시 원·달러 환율은 1530원을 돌파하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2주간의 일시적 휴전 소식에 1500원 선 아래로 내려앉았으나 불안한 정세 탓에 1480원 선에서 언제든 다시 튀어 오를 기세다.고환율 기조는 당분간 1400원대 후반에서 유지되거나 비관적 시나리오가 확산될 경우 다시 1500원 선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안전통화 선호 심리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 가능성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의 원유 공급 차질 우려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매 심리가 환율 상승을 강하게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1500원대 환율을 과거의 구조적 위기와 동일 선상에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나증권 전규연 애널리스트는 “역사적으로 환율이 1500원을 넘었던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당시는 외환보유고 고갈이나 신용위기 같은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동반됐으나 현재 한국의 CDS 프리미엄 등 건전성 지표는 안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차이는 시작점에 있다. 과거 위기 당시에는 800~1000원대에서 급등한 반면, 이번 전쟁 직전 환율은 이미 1440원 수준이었다. 즉 1500원대 환율을 구조적 파국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전쟁 이전 대비 원화가 약 5.8% 절하된 것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눈높이는 낮아지는 추세다. 하나증권은 올해 연평균 환율 전망치를 146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량이 급감하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공급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전 애널리스트는 “주요 아시아 통화 대비 원화의 절하폭이 과도한 측면은 있으나 에너지 수급 취약성 탓에 환율 전망치 상향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고유가와 고환율의 결합은 곧 가혹한 고물가로 이어진다. 이미 전세계에 전쟁 비용 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다. 참전하지 않은 한국도 받았다. 3월 소비자물가는 석유류 가격 급등의 여파로 전월(2.0%)보다 소폭 높은 2.2%를 기록했다. 아직은 물가안정목표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중동 분쟁의 파급 효과가 본격화되면서 향후 물가 상방 압력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제 및 농업 전문가들은 식료품과 에너지 물가에 미치는 이번 사태의 실질적 영향이 2027년까지 장기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스) 증권가 투자 tip
고환율 국면에서는 환율이라는 ‘매크로 역풍’을 견디는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 환율 상승은 반도체·조선·방산·K-푸드 등 수출 업종에 ‘환차익 보너스’를 주지만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기업에는 ‘비용 쇼크’로 작용한다.하나증권 이경수 애널리스트는 환율 효과를 제외한 조정 영업이익률(FX Neutral) 개선 기업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고환율 페널티를 판가 전가와 운영 효율화로 극복한 기업은 향후 대외 여건 안정 시 마진 스프레드가 폭발할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주요 종목으로는 제주항공, 한국전력, 롯데칠성, 오리온 등이 꼽힌다.
인플레이션 시기 소비재는 흔히 수혜주로 분류되나 고물가와 고환율이 겹치면 물류비·인건비 등 판관비 상승폭이 판매가 인상분을 앞지르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확실히 전가할 수 있는 독점적 지배력 유무가 중요하다. DS투자증권 김현지 애널리스트는 화학, 운송 서비스, 음식료 등 원자재와 물류비 비중이 큰 업종이 고전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매출원가율이 안정적이고 강력한 이익 모멘텀을 보유한 반도체, 조선, 상사·자본재, 증권 업종의 대응 여력이 돋보이는 ‘K자형’ 성장이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의 인플레이션 대응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나온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4월 7일 “추경을 포함해 다양한 정책을 통해 물가안정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더 나아가 ‘피지컬 AI(Physical AI)’를 통한 생산성 돌파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KB증권 하인환 애널리스트는 고임금과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봇 및 AI 산업에 국가적 투자가 집중될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로봇 제조사들을 소집해 안보 로보틱스 법안을 논의하는 흐름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벽을 기술로 넘으려는 장기적 포석이란 해석이다.
고금리
“금리인상 다시 성명서에 넣자”…안갯속 Fed와 한은
“금리인상 다시 성명서에 넣자”…안갯속 Fed와 한은
인플레이션은 다시 금리 동결 또는 인상으로 연결된다. Fed 내에서도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4월 8일 공개된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은 이란과의 전쟁 발발 이후 안갯속에 가려진 미국 경제와 그에 따른 정책 대응을 놓고 고심하는 위원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대다수(most)’ 위원들이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노동시장이 타격을 받아 금리인하가 필요할 수 있다고 전망했으며 동시에 ‘많은(many)’ 위원들은 인플레이션 위험으로 인해 금리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FOMC 당시 ‘일부(several)’ 위원만이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몇 달 만에 정책 기조가 양방향으로 열린 셈이다.
특히 매파적 입장을 견지한 일부 위원들은 성명서에 특정 조건 시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문구를 명시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유가 급등이 가계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금융 여건을 긴축시켜 오히려 경기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공존하고 있어 많은 위원은 여전히 금리인하를 기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주목할 것은 4월 셋째 주로 예정된 케빈 워시 Fed 의장 후보자의 청문회다.
국내 상황 역시 미국과 유사하다. 시장에서는 금리인상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으나 인플레이션 심화 여부에 따라 정책 방향이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
증권가에서는 한국은행의 연내 금리인상 조건으로 소비자물가상승률 2.5% 상회와 원·달러 환율 1550원 돌파를 제시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물가상승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지배적이지만 고유가와 고환율이 우리 경제에 전방위적인 ‘2차 충격’을 가할 경우 한국은행이 대응에 나설 것으로 봤다.
특히 4월 15일 예정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신 후보자는 서면 답변을 통해 현재로선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신중한 낙관론을 피력했다. 반도체 경기의 호조와 정부의 추경 등이 이란 전쟁의 충격을 일정 부분 완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그는 “전쟁이 길어져 물가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확대되면 어느 한 정책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통화·재정 정책을 포함한 여러 정책을 함께 활용해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가 상승발 공급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이 강한 편이지만 미국은 소비 강세에 기반한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도 담고 있다”며 “성장에 기반한 수요와 유가 상승에 의한 공급 충격이 겹치면서 미국의 금리는 한국보다 높은 상황을 유지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성장의 모멘텀과 금리차, 안전자산 선호가 겹치면서 달러화도 강세를 보이게 된다”며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3고’가 2022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스) 증권가 투자 tip
고금리 환경에서는 은행, 보험 등 금융주가 일차적인 방어주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금리인상 시에는 순이자마진(NIM) 개선 기대감이 반영되며 주가 하방 경직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당 성향을 높이는 대형 금융지주사들은 고금리 변동성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전망이다.금리가 높게 유지될수록 미래 가치를 선반영하는 성장주보다는 당장 견고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가치주와 고배당주의 매력이 커진다. 부채 비율이 높고 외부 조달 의존도가 큰 기업은 이자 비용 급증으로 펀더멘털이 훼손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반면 막대한 현금을 바탕으로 고금리 환경에서 이자 수익을 거두거나 M&A 기회를 노리는 현금 부자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대준 애널리스트는 높아진 시장금리를 고려해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며 고비용 환경을 버텨내는 고수익 산업에 주목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금리 상승 충격을 덜 받는 업종도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업종 중 보험, 은행이 해당된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