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이 아니라 발행어음런(run)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내 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발행어음 확대 움직임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발행어음은 만기가 1년 이하인 어음이다. 증권사는 발행어음으로 자본을 조달해 여러 자산에 투자한다. 최근 발행어음을 새로 찍는 증권사가 부쩍 많아졌다. 정부가 발행어음 조달액 중 25%를 중소·중견기업이 발행한 증권이나 대출 같은 모험자본에 의무적으로 집어넣도록 관련 규정을 바꾼 영향이다. 자금이 부동산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증권사 발행어음의 만기가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단기 자금을 코스닥벤처펀드처럼 만기가 3년이 넘는 상품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리 변동 리스크를 증권사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최근처럼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 증권사는 연 3.5% 수준인 조달 금리보다 0.5~1%포인트가량 높은 수익률을 내는 자산에 돈을 집어넣어 금리 차이(스프레드)를 수익으로 확보하고 있다. 단기 조달 금리가 연 4%로 뛰는데, 투자자산 수익률이 제자리면 역마진이 발생한다. 실제 증권사들은 2022~2023년 금리 인상기에 발행어음 운용 과정에서 상당한 적자를 봤다.
더구나 발행어음은 은행 예금과 달리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다. 예금보험공사처럼 방파제 역할을 할 곳이 없다는 얘기다.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한다면 투자자들이 발행어음을 중도 환매해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런 사태가 터지면 증권사는 보유한 현금으로 원금과 중도상환 수수료를 제한 약정이자를 바로 정산해줘야 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단기차입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안정성 비율은 평균 135.2%에 이른다. 모건스탠리(6.4%), 골드만삭스(56.4%) 등 해외 업체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빚이 많다. 이미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자 인가를 받은 한국투자증권, IMA 인가를 준비 중인 KB증권 등은 이 비율이 200%를 넘어섰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 등이 최근 발행어음 관련 유동성 리스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자료를 연이어 내놓은 배경이다.
금융당국은 발행어음과 관련해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증권사에 발행어음 허가를 확대하고 모험자본 투자 비율을 25%로 높이면서 재무 건전성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미국에선 사모대출 부실 우려가, 국내에선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는 국면이다. 금융당국이 발행어음 유동성 위험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