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공식 시음회 투표 결과 레드와인 부문 1위는 나파 밸리의 스택스 립 와인 셀러 72년산이었으며 그 뒤를 샤토 무통 로칠드 70년산, 샤토 오 브리옹 70년산, 샤토 몽로즈 70년산이 이었다.’
1976년 6월 7일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 실린 내용 중 일부다. 세계 와인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 기사 제목은 그 유명한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 프랑스를 중심으로 구세계 와인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50년 전 일이다.
당시 미국 와인은 ‘콜라 맛이 난다’며 조롱받던 시절. 현장 취재 기자였던 조지 태버는 기사를 송고하면서 빈티지 표기에 오류를 범하긴 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에 그 자신도 당황해서였을까? 공식 기록에 따르면 우승한 레드 와인의 빈티지는 기사와 달리 ‘1973년’인 것으로 밝혀졌다.
과연 ‘스택스 립’ 와인의 맛과 향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까. 현재 이 와이너리에서는 파리의 심판에서 우승한 ‘S.L.V.’ 외에도 ‘FAY’와 ‘CASK 23’을 생산하고 있다. 모두 카베르네 소비뇽 기반의 프리미엄급 레드 와인이다.
며칠 전 와인 실력이 상당한 병원 관계자들과 모임을 가졌다. 파리의 심판 50주년을 맞아 당시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의기투합한 것. 고민 끝에 ‘아르테미스 카베르네 소비뇽(2021)’을 시음 와인으로 결정했다. 이유는 ‘스택스 립’ 시그니처 와인의 세컨드 브랜드 성격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쉬운 대표 상품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짙은 루비 컬러가 신비롭게 다가왔다. 식탁에 깔린 흰 천 위에 잔을 올려놓고 찬찬히 살펴봤다. 가장자리에서 희미한 자주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어 첫 모금에서 풀보디 분위기를 단박에 잡았다. ‘캘리포니아 와인은 지금 당장 마셔도 좋고 시간이 지나 숙성시켜 마시면 더 맛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강렬한 타닌감과 검정 과일 향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복합미 풍부한 와인임에 틀림없다.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이다. 다만 한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기분 좋은 풀 냄새도 잡을 수 있었는데 이는 미국 와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시간이 좀 지나자 잘 익은 검은 과일과 초콜릿, 바닐라 향이 끝없이 올라왔다. 집중하면 가죽이나 담배 향도 잡을 수 있다. 메인 포도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98%) 외에도 카베르네 프랑(1%), 말베크, 메를로의 환상적인 블렌딩 비율도 돋보인다.
앞서 시작 와인으로 마신, 같은 와이너리의 ‘카리아 샤도네이(2023)’ 화이트는 부드러움과 우아함이 특징이다. 고급 와인의 기준점이다. 초반 쉽게 잡을 수 있는 오크 향과 은은한 바닐라 향이 함께 스며들어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카리아’는 그리스어로 우아함을 의미한다고.
모임에 참석한 김모 원장은 “이 와인에는 잘 익은 과일 향이 깊숙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아쉽게도 새 오크통 사용 등으로 본래의 성향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적 관점이 명쾌하다.
블렌딩 비율이 특이하다. 보통의 경우와는 달리 샤도네이(98%) 외에도 뮈스카(2%)를 섞어 양조했다. 그 때문인지 첫 모금에서 복숭아와 배의 풍미를 잡을 수 있다. 이어 바닐라와 부드러운 오크 향이 조화를 이룬다. 복합성도 좋아 봄철에 딱 어울리는 와인이다. 이 와이너리에서는 소비뇽 블랑 와인(아베타)도 생산한다.
지난주 온 세상 눈길이 ‘아르테미스 2호’ 뉴스에 쏠려 있었다. 반세기 만에 나선 유인 우주선이기 때문이다. 탐사 현장을 되돌려보면서 같은 이름의 ‘파리의 심판’ 와인 ‘아르테미스’를 한잔 마셔보면 어떨지. 공교롭게도 50주년이 주는 의미가 각별하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