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형 펀드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최근 한 달여 사이 채권형 펀드에서 4조원 넘는 자금이 유출됐다. 자산운용사들이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응하기 위해 보유 채권을 매도하면서 채권 가격 하락(금리 상승)을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7일 한국펀드평가의 자산운용 유형별 통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39조8566억원(설정액 기준)이던 국내 채권형 펀드 규모는 이달 6일 35조7373억원으로 한 달여 사이 약 4조1193억원(10.3%) 감소했다. 단기물 중심의 ‘일반채 단기 유형’에서만 2조5000억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갔다. 국공채와 회사채 일반형에서도 골고루 자금 이탈이 나타났다.채권형 펀드 수익률은 연초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중 채권 금리 상승에 따라 손실 폭이 큰 흥국초장기채플러스(-6%), 삼성액티브알파코리아채권(-3.10%), KB장기국채플러스(-2.91%) 등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냈다. 증권업계에서는 중동 전쟁 격화 등의 영향으로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투자자들이 채권 평가 손실을 견디지 못해 환매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고채 금리는 10년 만기 기준으로 연 2.8%대에서 연 3.7%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통상 전쟁 또는 지정학적 위기가 커지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강해지면서 채권 가격은 오르고 채권 금리는 하락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채권시장마저 피난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가가 상승하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해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이 채권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황이 급변하면서 채권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도 비상이 걸렸다.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응하기 위해 보유 중인 채권을 시장에 팔아치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산운용사의 채권 매도가 채권 금리를 끌어올리는(채권 가격 하락)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채권형 펀드에서 유출된 자금은 머니마켓펀드(MMF) 등 대기성 자금으로 이동하고 있다. MMF 설정액은 지난 2월 157조9125억원 대비 17조562억원 증가한 174조9687억원으로 불어났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일시적으로 MMF에 머무르는 모습이다.
국내 ETF 시장으로도 약 27조2000억원의 뭉칫돈이 흘러들었다. 코스피200 등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ETF에는 약 23조6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