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연금은 안전자산’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에 머물던 퇴직연금 자금이 ETF, 주식형 펀드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작년부터 국내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자 개인이 보다 공격적으로 퇴직연금 계좌를 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적배당 DC형 계좌 1년 수익률 18.2%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DB·DC·IRP) 계좌 내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지난 1월 말 기준 64.6%로 집계됐다. 원리금 보장형은 35.4%에 그쳤다. 2020년 말만 해도 실적배당형(35.0%)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 비중(65.0%)의 절반 수준이었는데 코스피 랠리를 거치면서 투자 성향이 바뀌었다.자산 배분도 역시 한층 공격적으로 변했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 계좌 내 주식형 펀드·ETF 편입 비중은 54.9%에 달했다. 2020년 말 35.2%였는데 작년 말 처음으로 편입 비중이 50%를 넘어선 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채권형과 혼합형 상품은 각각 10%대 초반에 머물렀다.
‘머니무브’를 이끈 핵심 요인은 수익률 격차다. 지난해 말 기준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한 확정기여(DC)형 계좌의 1년 수익률은 평균 18.2%로, 예금 중심 계좌(2.86%)의 여섯 배에 달한다. 김동엽 미래에셋증권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퇴직연금을 비롯해 장기 투자의 가장 큰 취약점은 인플레이션”이라며 “물가 상승에 따른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4050 연금 투자 비중 ‘최고’
이 같은 변화는 20대부터 70대까지 전 연령대에서 나타난다. 올해 1월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DC·IRP) 계좌 내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40대(75.3%)와 50대(72.8%)다. 소득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인 만큼 잉여 자금을 과감하게 위험자산에 베팅해 노후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젊은 층의 연금 투자 성향도 한층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20대와 30대의 실적배당형 투자 비중은 각각 57.1%, 69.6%로, 5년 전보다 크게 높아졌다. 이들이 투자한 상품의 60% 이상이 주식형 ETF 등 위험자산에 집중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은퇴기에 접어든 70대 이상 ‘실버 개미’다. 사회 통념상 안전자산 비중을 극대화해야 할 시기지만 이들의 실적배당형 비중은 2020년 30.6%에서 올해 1월 기준 72.2%로 껑충 뛰었다.
이들은 투자 자산의 절반 이상(54%)을 주식형 상품에 묻어뒀다. 안전성이 높은 채권형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며 화폐 가치가 하락하자 고령층 역시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연금계좌 성과를 가른 변수는 ‘국내 주식’ 편입 여부다. 수익률 하위 5%의 포트폴리오가 S&P500, 나스닥100 등 미국 시장 대표지수와 미국 장기채 ETF에 쏠린 데 비해 수익률이 높은 ‘연금 고수’는 철저하게 국내 주식형 테마 상품을 집중적으로 매수했다. 지난 1년간(올 2월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 수익률 상위 5% DC·IRP 계좌에서 가장 많이 편입된 종목 1위는 ‘TIGER 반도체TOP10’이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 등 ‘반도체 투톱’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집중 투자 ETF다. ‘KODEX 반도체’(4위) ‘TIGER 반도체’(6위)를 비롯해 ‘TIGER 2차전지소재Fn’(7위) ‘SOL 조선TOP3플러스’(8위) 등 국내 주도 산업에 투자하는 테마형 상품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