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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중요한 시험 앞두고 먹는 '이것' [신예희의 나홀로 한입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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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중요한 시험 앞두고 먹는 '이것' [신예희의 나홀로 한입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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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와 호찌민은 뭐가 어떻게 달라?”


    두 도시를 각각 한 달씩 여행하고 돌아와 받은 질문이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을 텐데, 머릿속에 맛있는 것만 가득 찬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하겠다. “하노이는 국수고, 호찌민은 밥이야.”

    베트남 북부와 남부는 날씨와 토양이 꽤 다르고, 자연히 삶의 방식과 음식도 차이 난다. 같은 쌀을 가지고도 북부 하노이에선 면을 뽑고 남부 호찌민에선 밥을 짓는다. 하노이엔 국숫집이 많고도 많다. 단면이 둥근 국수와 납작하고 네모난 국수, 가느다란 국수와 굵직한 국수, 뜨겁게 먹거나 미지근하게 먹는 국수, 삶은 다음 뭉쳐서 떡처럼 만든 걸 칼로 잘라 먹는 국수… 우리에게 친숙한 퍼(ph?)와 분짜(bun ch?) 모두 하노이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것이다. 역시 국수의 도시다.


    그럼에도 하노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침 식사 메뉴는 의외로 밥이다. 콕 집어 찹쌀밥. 베트남에선 ‘쏘이(xoi)’라고 한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쌀이라면 으레 길고 찰기 없는 장립종 쌀을 떠올리기 쉽지만, 수천 년 전 이곳에서 최초로 재배한 작물은 의외로 찹쌀이다. 백미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찹쌀밥은 베트남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하노이의 아침, 쏘이 쎄오(xoi xeo)
    쏘이를 아침으로 많이들 먹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역시 빠르고 간단해서일 것이다. 음식이 나오는 속도도, 먹는 시간도 무척 짧다. 미리 지어서 식혀둔 찹쌀밥에 토핑을 척척 올리면 끝이고, 뜨겁지 않으니 와구와구 퍼먹기 좋다. 하노이엔 쏘이를 파는 식당과 노점이 무척 많은데, 노점 역시 정식 허가를 받아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하는 경우가 많아 구글 지도에도 올라와 있을 정도다.



    더불어 카페 메뉴판에서도 쏘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하노이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달콤한 쏘이도 무척 인기 있는데, 특히 코코넛 밀크와 설탕을 넣은 건 약밥과 비슷해 괜히 반갑다. 여기에 잭프룻과 두리안, 망고 등 과일을 곁들이고, 참깨랑 땅콩까지 뿌리면 더 맛있다.


    여러 가지 토핑 중에서 녹두를 얹은 게 바로 오늘의 주인공 ‘쏘이 쎄오((xoi xeo)’다. 우선 밤새 잘 불려둔 녹두를 푹 삶아서 곱게 갈아주는데, 물을 거의 넣지 않고 아주아주 뻑뻑한 상태로 만든다. 그래서 실제론 간다기보다는, 으깨고 빻는 쪽에 더 가깝다. 그 뻑뻑하고 푸슬거리는 반죽을 훑어내 양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뭉쳐서 포멜로만 한 큼직한 덩어리를 만들면 녹두 준비 완료다. 이 것보다 더 크면 한 손에 잡히지 않아 조리하기 불편하다.




    이번엔 밥을 지을 차례다. 우리와는 달리 두 번에 걸쳐 익히는데, 우선 찹쌀이 반쯤 익을 정도로만 찐 다음에 넓게 펼쳐놓는다. 다 식으면 기름을 두르고 한 번 더 쪄서 완성. 요렇게 하면 쫀득하면서 부드럽다. 아 참, 밥을 짓기 전에 찹쌀을 강황물에 담가서 물들이는 것도 잊지 말자. 너무 진하게는 말고, 가볍게 노란색이 감돌 정도로만 하는 것이라 딱히 밥에서 강황 냄새가 나진 않는다.

    얼른 주문해야지. “쏘이 쎄오 하나 주세요!” 그러면 바나나잎이나 접시에 찹쌀밥을 먼저 담고, 그 위에 녹두 덩어리를 칼로 비스듬히 쓱쓱 베어서 얹어준다. ‘쎄오(xeo)’는 비스듬하다, 어슷하다는 뜻의 의태어다. 강황의 노란빛으로 물든 밥 위에 은은한 연둣빛의 녹두가 올라가니, 얼핏 보면 닭가슴살을 저며서 밥 위에 올린 것 같기도 하다. 쏘이 쎄오는 워낙 인기 있는 메뉴라 녹두 덩어리가 금방 동나, 식당이든 노점이든 한 명은 밥을 푸고 한 명은 연신 녹두를 꾹꾹 뭉치느라 바쁘다.




    맨 위에는 황금색의 샬럿 튀김을 듬뿍 뿌린다. 샬럿은 양파를 축소해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맛도 꽤 비슷하다. 샬럿 쪽이 좀 순하달까. 얇게 채를 썰어 튀긴걸 ‘한삐(Hanh Phi)’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오만가지 음식에 깨를 냅다 뿌리듯, 베트남에선 뭔가 좀 아쉽다 싶으면 한삐를 후드득 뿌리는 것 같다. 그럼 고소한 기름 맛과 샬롯 자체의 풍미, 바삭거리고 아작거리는 식감이 더해져 음식 맛이 확 좋아진다. 보통은 대량 생산된 한삐를 사다가 쓰는데, 신경 좀 쓴다는 식당에선 직접 채를 썰어 튀긴단다.
    호불호 없는 쏘이 쎄오의 매력
    쏘이 쎄오의 맛은 어지간해선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간간하고 구수하고, 무엇보다 고소하다. 보기보다 훨씬 고소하다. 찹쌀밥에 기름기가 싸악 감도는데, 기분 탓인 게 아니라 진짜로 기름을 뿌리기 때문이다. 무려 닭기름. 닭 껍질을 달달 볶으면 기름이 쪼옥 빠져나오고 껍질은 바삭해지는데, 그 기름을 모아뒀다가 밥 위에 한 숟갈 뿌려주는 것이다. 느끼할 것 같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쫀쫀한 찹쌀밥에서 튀김옷이 얇은 옛날 스타일의 통닭 같은 풍미가 감돈다. 닭기름 대신 코코넛 밀크를 뿌려주는 채식 쏘이 쎄오도 있다. 그 역시 무척 맛있다.

    찹쌀밥과 녹두, 샬럿 튀김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데, 요런조런 토핑까지 얹으면 더 신이 난다. 하긴, 잠깐 여행하는 것이니 이왕이면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봐야 한다. 토핑은 가게마다 다양하다. 어묵 같은 질감의 베트남 소시지, 뽀득뽀득한 중국식 소시지, 양념 국물에 푹 조린 부드러운 삼겹살 덩어리와 달걀, 상큼한 오이무침, 당근과 무피클, 버섯 조림, 달달 볶은 닭고기, 실처럼 뜯어낸 돼지고기 육포, 달걀프라이… 정답은 없다. 입맛대로 느낌대로 두세 가지 고르면 적당하겠다.



    베트남 사람들은 쏘이에 상서로운 의미가 담겼다고 믿는다. 명절과 결혼, 생일 등 좋은 날이면 오방색으로 물들인 아름다운 쏘이를 만들어 상에 올린다. 자줏빛의 용과와 노란 강황, 붉은 걱 열매, 녹색 판단 잎, 코코넛 밀크 등으로 색과 맛을 더한 것이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선 찰밥처럼 찰싹 붙으라며 쏘이를 먹기도 한다. 여행 중에 맛보는 간단한 아침 식사가 실은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었다니 괜히 들뜬다. 여행은 이렇게 새로운 걸 발견하는 맛에 계속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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