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극에 달한 지난 한 달간,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과 개인 투자자 간의 유례없는 '수급 전쟁'이 벌어졌다.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와 미·이스라엘 간 충돌 여파로 외국인이 역대급 물량을 쏟아냈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이를 고스란히 받아낸 것으로 나타났다.
'동학개미의 귀환’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첫 거래일인 3일부터 27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30조2630억 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개인 투자자는 같은 기간 30조 6880억 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이 던진 물량을 대부분 소화했다.이는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수급 매치다. 호르무즈 봉쇄로 인한 유가 급등과 원·달러 환율 상승이 한국을 '위험 자산'으로 분류하게 만들었고, 이에 공포를 느낀 외국인이 자금을 대거 회수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 기간 코스피는 12.90% 하락하며 주요국 지수 중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외국인의 이탈은 대장주인 삼성전자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만 삼성전자를 16조7280억 원어치 팔아치웠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48.90%까지 추락하며 50% 선이 무너졌다. 이는 2013년 10월 이후 약 12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외국인의 기록적인 매도세에도 개인들이 버티기에 나선 배경에는 과거 위기 상황에서의 '학습 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 전쟁과 봉쇄라는 단기 악재가 해소될 경우, 주가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저가 매수'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개인은 외국인이 가장 많이 판 삼성전자를 15조 1,930억 원 규모로 사들이며 가장 적극적인 매수 주체로 나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봉쇄로 인한 불확실성이 여전해 외국인의 수급 복귀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개인 투자자들이 과거 경제 위기를 겪으며 쌓은 내공으로 증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