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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미회담 상당히 잘 대처…오바마·트럼프 통역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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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미회담 상당히 잘 대처…오바마·트럼프 통역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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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외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상당히 잘 대처했다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여러 대통령의 한국어 통역사로 잘 알려진 이연향 전 미국 국무부 통번역국장은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회담에 대해 이같이 회고했다. 그는 지난달 말 16년 7개월간의 국무부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 전 국장은 북미회담이 "세계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회담이었다"면서 "정상들도 긴장하고 저도 긴장했다"고 했다. 자신도 나름대로 분위기를 편안하고 차분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는 그는 긴장 속에 시작된 회담이었음에도 대체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또 "딜(협상)이 되고 안 되고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두 정상이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과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솔직하게 대화하는 분위기였다"고 떠올렸다. 대화의 점유율에 대해서도 두 정상이 비슷했다고 전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김 위원장이 영어를 썼는지에 대해선 "조금 알아듣는 것 같았는데 영어를 쓰는 것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진행된 3차 북미회담에서 두 정상만 나란히 걸어간 순간에 대해선 비교적 짧은 순간이었고 길이 좁아 통역이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아마 말이 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매우 좋은 관계"라고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건 맞는 이야기"라고 끄덕였다.


    북미대화는 그의 통역 경험 중에서도 특별한 점이 있었다. 이 전 국장은 "어머니가 평양 출신이고 외가가 모두 평양 분들이어서 북미 회담 통역은 내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1~3차 북미대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역을 모두 맡았다. 그는 "분단의 역사 때문에 언어가 많이 다른 부분이 있었다"면서 "어떤 단어는 북한 쪽 영어 통역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쪽이 쓰는 단어를 활용해서 말을 전하기도 했다"고 했다.





    통역을 하기 어려운 대통령은 누구였느냐는 질문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꼽았는데, 이유는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어서 문장이 법률 문서처럼 길다"면서 " 말을 하면서 이어 붙여서 아이디어를 완성하고, 단어를 구체적으로 쓰는 점이 어려웠다"고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의 속도가 빠르고,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주제로 갑자기 넘어가면서 그 연결고리를 알려주지 않는다"면서 "그 고리를 집어넣어서 통역을 해야 듣는 이가 의미를 연결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이 조금 더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 국장은 30대 초반, 두 아이 엄마로서 늦깎이로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다. 이슬람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970년대 이란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한 부친 이재우씨(2019년 작고)를 따라 이란에서 국제중학교를 다닌 덕에 영어가 익숙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대와 이화여대에서 통역대학원 교수로 근무하던 중 2009년 미국 국무부의 요청을 받고 국무부에서 다시 통역사로 '실전'에 나서게 됐다. 그는 "한국어 외교 통역사 정직원 자리가 만들어졌으니 지원해 달라는 국제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결정했는데, 막상 가 보니 지원자가 여럿 있었고 시험도 봐야 했다"며 웃었다.


    국무부에서 그는 '닥터 리'로 불렸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성품을 바탕으로 인종과 성별의 벽을 뛰어넘어 빠르게 승진했다. 국무부에 합류한 후 11년 만에 통번역국장 자리에 올랐다. 70여명의 정직원과 1000여명의 계약직(프리랜서) 통번역사를 관리하는 고위직이다. 약 60가지 언어를 총괄한다. 그의 은퇴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친필 서명을 한 감사장을 전달했다.

    이 전 국장은 자신의 업무 중 대부분은 관리자로서의 역할이었고, 실제 외교 통역사로의 활동 비중은 "5%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국장 취임 후에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화상회의 과정에서 원격으로도 동시 통역을 원활히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했고, 인공지능(AI) 통번역 기술을 활용하는 데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다고 소개했다. 다만 "AI가 너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보이지만 오류가 많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꼭 감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를 상대하는 국무부의 통번역 업무를 관장하는 것에 대해 그는 "수정구슬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듯이 항상 미리 준비하는 일"이라고 했다. 어떤 언어의 수요가 늘어날 지, 어느 나라와의 관계가 강화될 지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인원을 적시에 준비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혁명 전 이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지금 이란과 전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통역 업무가 "(국가 간) 관계의 흐름, 역사의 흐름을 보는 일이기도 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갑작스레 우크라이나 언어 능통자를 찾기도 했고, 러시아와 한동안 대화가 끊어진 순간에는 러시아어 통역사들이 일거리가 없어 고민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한미관계에 대해선 "항상 굳건하다"면서 "다른 나라를 보면 (통역 수요에) 부침이 심한 언어도 많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어 담당 정직원은 1명, 계약직은 10~15명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의 마지막 현장 통역 업무는 지난해 10월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이었다. "당시 호텔에 계신 분이 사진을 함께 찍어 달라고 요청하시면서 자녀들이 제 영향을 받아서 영어를 전공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제가 그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에 감동 받았다"고 했다. 이 전 국장은 지난달 말 은퇴 후 워싱턴DC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담당하고 싶다"고 그는 밝혔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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