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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인가 퇴물 장사꾼인가…여러분이 평가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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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이라도 보는 이를 물어뜯으려는 듯 입을 쩍 벌린 상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광경이다. 거대한 유리 수조 안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상어 사체를 전시한 이 작품 하나로,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0)는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허스트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파격적인 작품과 숱한 기행 때문이다. 그는 죽음과 자본, 과학에 대한 맹신 등 미술에서 잘 다루지 않은 주제들을 혁신적 방식으로 조명해 스타 작가로 도약했다. 반면 그가 자극적인 작품으로 관심을 끄는 한물간 장사꾼이라고 깎아내리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허스트 전시 계획을 발표하자 미술계에서 “왜 하필 허스트냐”며 논쟁이 일었던 이유도 그래서다.


    허스트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인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지난 20일 개막했다. 초기작부터 최신 회화까지 50여 점, 평생의 주요 작품 대부분을 포함한 대규모 전시다. 그가 거장인지 장사꾼인지 이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차례다.
    죽음을 다루는 예술가
    허스트가 처음부터 집요하게 파고든 주제는 죽음이었다. 초입에 걸린 사진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는 허스트가 열여섯 살 때인 1981년 시체 안치소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어린 허스트 옆에 있는 건 진짜 시체의 머리. 표정은 웃고 있지만 허스트는 훗날 “속으로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털어놨다. 죽음에 대한 의도적 외면과 조롱, 그 밑에 깔린 공포와 삶에 대한 집착은 이후 허스트의 작품 세계를 지배한다.


    전시 2부에서 마주하는 그 유명한 상어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에는 허스트의 작품 세계가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다. 유리 수조 안에 입을 벌린 채 떠 있는 상어의 사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요한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상어는 언제 어디서 인간에게 닥쳐올지 모를 죽음의 위협, 그리고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 자체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공개된 이후 20세기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았다.


    ‘천 년’(1990)은 커다란 유리 상자를 두 칸으로 나눈 설치 작품이다. 한쪽에 소의 잘린 머리가 놓여 있고, 반대쪽 하얀 칸 안에는 파리 유충이 들어 있다. 유충은 부화해 파리가 된 뒤 먹이를 찾아 구멍을 통해 소머리 쪽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그 위에 있는 살충기에 걸리면 즉시 허망한 죽음을 맞는다.

    생명의 탄생과 생존, 무작위로 찾아오는 죽음이 유리 상자 안에서 실시간으로 반복된다. 파리가 부화하는 정육면체는 주사위처럼 생겼다. 인간의 삶과 운명은 주사위 놀이에 불과하고, 결국 마지막은 언제나 죽음이라는 암시다. 1990년대 초반 제작한 이 작품들로 허스트는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참가하고, 1995년 영국 최고의 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았다.
    그를 바라보는 극과 극 시선
    3부 ‘침묵의 사치’에서는 의학에 대한 맹신을 탐구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허스트는 “과거에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권위를 종교가 쥐고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의학이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며 “의학을 맹목적으로 믿는다는 점에서 종교와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믿는 대상이 신에서 의학으로 바뀌었을 뿐 따지지 않고 믿는다는 구조 자체는 똑같다는 것이다.




    허스트가 1998년부터 런던에서 6년간 운영한 레스토랑 ‘약국’을 재현한 공간에서 이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분류되고 정렬된 알약들에는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 자신의 질병과 운명까지 통제하려는 욕구가 반영돼 있다.

    허스트의 탐구 주제는 자본으로 이어진다. 전시 후반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다. 인간의 머리뼈를 백금으로 주조한 뒤 8601개 다이아몬드로 뒤덮었다. 자본이 신의 빈자리를 차지한 해골을 보면 묘한 불안과 공허가 몰려온다. 그 뒤로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가 펼쳐진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 작품이 나비들의 날개 수천 장, 즉 다른 생물의 죽음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전시 공간인 MMCA 스튜디오에는 런던에 있는 허스트의 작업실 ‘리버 스튜디오’가 그대로 옮겨져 있다. 이 공간에 걸린 그림들은 미공개작이다. 작가가 쓰던 붓과 페인트, 작업복과 신발, 허름한 소파까지 놓여 있다. 이곳에서 QR코드를 찍으면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플로(FLO)를 통해 허스트가 즐겨 듣는 음악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 3부는 허스트가 비판받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1·2부에는 비록 논란을 일으키긴 했어도 현대미술사를 뒤흔든 상징적 작품들이 나와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작품은 이전 작품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시장에 나온 ‘벚꽃’ 연작, 미완성 회화 작품 등은 확실히 상어 작품 등에 비해 임팩트가 약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 상업적 논란이 더해지며 허스트의 ‘안티팬’은 더 늘었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2007년 익명의 투자자 집단이 1000억원 가까운 가격에 구매했다고 알려졌지만, 투자자 중 허스트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 비판받기도 했다.
    문제아 허스트, 어떻게 봐야 하나
    미술계에서는 “왜 국립미술관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성기 지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작가를 연구·조명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과 동떨어진 전시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이 전시 예산은 30억원이 넘는다. 웬만한 지역 공립 미술관 2년치 예산과 맞먹는다. 미술계 관계자는 “한 전시에 이만한 예산이 몰리면 중소 규모 전시나 실험적 전시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술관은 이런 비판에 반박한다. 송수정 전시과장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허스트를 알지만, 정작 작품 진본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세계적 작가의 주요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국립미술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관람료 8000원, 전시는 6월 2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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