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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사랑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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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사랑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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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의 문제적 작가 미셸 프랑코의 신작 <드림스>는 기이하게도 독일계 미국 사회심리학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사상에 대한 지적 오마주 같은 느낌을 준다. <드림스>는 샌프란시스코와 멕시코시티가 배경이다.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이나 『소유냐 존재냐』는 모두 멕시코시티에 살면서 저술한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페르난도(아이작 에르난데스)는 부유한 미국인이자 연상인 여성 제니퍼(제시카 채스테인)에게 소유되고 길러진다. 그는 거기서 벗어나려 애쓴다. 『소유냐 존재냐』의 핵심 사상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제니퍼와 페르난도는 처음엔 격렬한 섹스로 뜨겁게 이어지지만 결국 서로에게 끔찍한 일을 자행하는 폭력적인 관계로 전환된다. 이는 비교적 정확하게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가리키고 지향하는 대목과 연결된다.




    프롬은 첫 번째 부인이자 10살 연상으로 자신의 정신분석가였던 프리다 라이히만과 1926년에 결혼했으나 몇 년 후 이혼하며 정신적 지배관계에서 벗어난다. 그건 마치 페르난도가 제니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실현된 모습 같은 것이다.


    프롬은 1934년에 사진작가 헤니 구를란트와 재혼하지만 사별하고 뉴욕의 사업가인 애니스 프리먼과 편지로 일상의 위로와 사랑을 나누다가 1953년에 세 번째로 결혼한다. 『사랑의 기술』은 그 직후에 나온 것이다.

    페르난도와 제니퍼가 프롬의 저서를 읽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어쩌면, 파국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영화 내내 생각하게 한다. 감독 미셸 프랑코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로 프롬의 사상을 생각했을까. 영화를 본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의 영역이겠으나 ‘합리적 의심’일 수는 있을 것이다.



    여주인공 제니퍼는 샌프란시스코 최상류 가문의 딸이다. 아버지인 마이클 매카시(마샬 벨)는 아들 제이크(루퍼트 프렌드)에게는 사업체를, 딸인 제니퍼에게는 ‘매카시 패밀리 파운데이션’이란 세계적 규모의 예술재단을 맡긴다. 이들 가문의 성(姓)이 매카시인 점이 흥미롭다. 극우 이념인 매카시즘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좀 달라 보이는 이유이다. 감독의 의도된 설정으로 보인다.

    아버지 마이클은 아들 제이크로부터 여동생 제니퍼가 멕시코 이민자와 같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한다. “이민자를 돕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야!” 제니퍼 역시 페르난도를 그렇게 탐닉하고 사랑하는 척, 사실은 그의 언어 곧 스페인어를 단 한 마디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전사(前史)는 나오지 않고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지만 제니퍼가 페르난도를 만난 것은 이 재단의 멕시코시티 지부 활동 중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페르난도는 재능있는 무용수이다. 남자는 부호인 여자와 (비록 착각과 착시라고 하더라도)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제니퍼에게 가기 위해 밀입국을 한 이유이다.


    제니퍼의 집은 퍼시픽 하이츠 급의 고급 단독 주택이다. 페르난도가 밀입국한 것은, 2013년에 이미 불법 이민으로 추방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정식비자는 고사하고 관광비자조차 받을 수 없는 이유이다.

    제니퍼는 페르난도를 만나면 늘 뜨겁고 격렬한 정사를 나눈다. 남자가 자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모텔 잡일을 하며 살아가는 걸 보고 실망해서 돌아온 날에도 그녀는 그와 나눴던 음란하면서도 농도 짙은 대화, 그 전희(前戱)를 기억 속에서 소환시킨다. 이때 둘이 나눴던 대사는 수위가 매우 높다. 어쩌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안 그런 척하다가도 둘만이 있을 때 나눌 법한 성적 이야기이다.



    제니퍼에게 페르난도는 소유하고 지배하는 ‘펫’이다. 중남미 출신 아티스트들 다수가 예술적으로 그런 것처럼 페르난도 역시 무용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그는 어떻게든 홀로서기를 감행하려 애쓴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자리까지 접근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의 제보로 이민국에 체포돼 멕시코로 추방된다.

    제니퍼는 그를 다시 멕시코에 있는 자기 소유의 호화 주택에 머물게 하고 남자를 찾아 그곳으로 간다. 처음에 둘은 뜨겁고 다정하며 페르난도의 친구들도 초대해 파티까지 열기도 하지만 곧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둘의 사랑은 폭력과 비극의 꼭짓점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이런 유의 이야기는 원래 할리우드의 주특기였다. 부자인 늙은 남자가 젊고 재능은 있지만 돈이 없어 가난한 여자를 후원한다, 여자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스타가 되고 남자는 몰락한다, 그럼에도 둘의 사랑의 마음은 확인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런 스토리는 윌리엄 와일러가 연출하고, 로렌스 올리비에와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1952년 영화 <캐리>(한국 개봉 제목 <황혼>)의 전통에 기인한다.

    2011년에는 프랑스 출신의 미셸 하자나비시우스가 <아티스트>란 작품으로 이를 번안했고 2012년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미셸 프랑코는 <드림스>를 통해 그 같은 할리우드의 거짓된 환상을 여지없이 비틀고 파괴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의 진짜 현실을 보여 준다.

    <캐리>에서 중년 남성이 앳된 여성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관계를 프랑코는 성별과 계급으로 뒤집는다. <드림스>의 제니퍼는 페르난도를 사랑해서 돕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자신을 최면하며 지원하는 것이다. 제니퍼는 페르난도를 (자기 가족 이름인 매카시처럼) 묶어 두고 통제하며 무엇보다 소유하려 한다.

    이전 영화 <아티스트>에서 두 남녀는 결국 예술이라는 큰 울타리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합하지만 미셸 프랑코는 그것이 계급과 신분, 특히 이민자란 단어가 구분하는 차이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드러내게 한다.



    할리우드의 모든 멜로영화는 (계급적, 성적, 이념적) 차이가 큰 남녀의 만남으로 시작해 그 차이가 없어지는 이야기(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귀여운 여인> 등)로 끝을 맺지만, 프랑코는 그런 이야기 구조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려낸다. 차이는 차이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지금의 계급사회처럼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지기 마련이다.

    <드림스>가 그려내는 러브스토리는 바로 그 지점에 핵심이 있다. 미셸 프랑코를 두고 늘 차가운 리얼리스트라고 부르는 것도 이야기가 보여야 하는 현실과 가짜 이야기가 지니는 판타지의 환영을 가차 없이 분할하고 구분해 내기 때문이다. 프랑코의 영화(<크로닉> (썬다운> <메모리> 등)가 대중적으로, 무엇보다 상업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영화를 통해 차가운 현실을 재확인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대중들은 그런 경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셸 프랑코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몇 가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연기력이 있는 남자 배우를 캐스팅해 발레 훈련을 시킬 것인가, 아니면 전문 발레리노를 기용해 연기 연습을 시킬 것인가. 프랑코 감독은 후자를 선택했다. 페르난도 역의 아이작 에르난데스는 실제로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무용수이다. 현재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이다. 정상급 발레리노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특별한 연기지도가 없어 보이는 듯한 느낌은 워낙 발레라는 행위예술이 몸을 적극적으로, 때론 극단적으로 활용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인 만큼 에르난데스의 몸 연기는 이미 매우 자연스럽게 훈련된 상태로 느껴진다. 그의 섹스씬은 마치 발레에서 상대인 프리마 발레리나와 펼치는 다양한 신체 동작의 일부처럼 보일 정도이다.



    연상의 부자 여자와 가난한 젊은 남자 커플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는 차원에서 에르난데스(1990년생)보다 한참 위인 제시카 채스테인(1977년생)을 캐스팅한 점도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채스테인은 최근 프랑코의 얼터 에고(영화적 분신)처럼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의 격정 연기는 채스테인의 완숙한 배우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서 이민자들이 차별받는 모습을 지금의 ‘트럼프 이슈’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도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정치적 이슈를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페르난도 개인이 처한 위기로 구체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것이 바로 영화예술이 해야 할 방법론이다. 개인에서 전체로, 구체에서 추상으로.



    모든 이는 사랑에 대해 각자 자신만의 꿈을 갖는다. <드림스>는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꿈일 수 있는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결국 서로의 악몽이 될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준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은 삶 그 자체이거나 존재 그 자체일 수 있다. 소유냐 존재냐 그것이 문제이다. 사랑 역시 그 주제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모두 사랑(하기)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원제는 ‘The Art of Love’가 아니라 ‘The Art of Loving’이다. 영화 <드림스>는 바로 그것을 얘기하는 영화이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소유하는 것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영화 <드림스>가 질문하고 있다. 지난 3월 18일 소수 예술영화관에서 개봉됐다. 26일 현재 1,612명이 봤다. 이렇게 대접받을 영화는 아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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