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산업 현장, 그 뜨거운 최전선에는 수십 년간 쇳물을 부어온 이 선생님 같은 이들이 있었다. 스테인리스를 녹이는 3,000도의 열기 속에서 유해 분진과 연기는 공기보다 익숙한 존재였다. 타오르는 모래와 금속 흄이 뒤섞인 작업장은 누군가에겐 생계의 터전이었으나, 이 선생님의 폐에는 소리 없는 흉터로 남았다.
평생을 성실함 하나로 버텨온 그에게 찾아온 폐암 진단은 가혹했다. 시작은 우연히 권유받은 엑스레이 촬영이었다. 안과 치료 중 스치듯 지나간 검사 결과는 ‘폐암 3기’라는 믿기 힘든 현실로 돌아왔다. 평생 현장에서 단련된 몸이었기에 오진이라 굳게 믿고 싶었지만 대형 병원에서의 정밀 검사는 림프절 전이라는 냉혹한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제 다 끝났구나”라는 절망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료진의 한마디는 벼랑 끝에서 붙잡은 가느다란 밧줄과 같았다. 두려움과 간절함이 교차하던 수술대 위에서의 시간, 그것은 새로운 삶을 향한 필사적인 사투였다.
수술 후의 일상은 예전 같지 않았다. 완만한 언덕조차 거대한 벽처럼 느껴질 만큼 숨이 가빴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 ‘만 보 걷기’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새기며 한 걸음씩 폐의 기능을 되찾아갔다. 진통제에 의존하던 관성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정신적 고통까지 이겨낸 끝에,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전이 없음, 이제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눈물겨운 호전 소식은 단순한 행운이 아닌, 스스로 일궈낸 승리였다.
Q. 처음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셨을 때, 그 막막했던 심경이 어떠셨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았죠. 가족들을 위해 쇳가루 마시며 일한 세월이 얼만데, 내 몸에 이런 병이 뿌리를 내렸을 줄이야... 처음엔 믿을 수가 없어서 현실을 부정하며 다른 병원만 전전했습니다. 그런데 3기라는 결과에 림프절까지 전이됐다는 말을 듣고 나니, 정말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딱 맞더군요. ‘나라는 인생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구나’ 싶어 한동안은 넋을 놓고 지냈습니다.”
Q. 고통스러운 투병 기간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본인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수술하고 나니 폐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숨쉬기가 버거웠어요. 하지만 가만히 누워 있으면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딱 한 걸음만 더’라고 되뇌며 하루 만 보를 채웠죠. 약 기운에 취해 몽롱해지는 걸 경계하며 진통제도 눈물겹게 줄여 나갔습니다. 결국 치료는 의사가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는 내 몫이더라고요. 포기하지 않고 내 몸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 그게 회복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느꼈습니다.
Q. ‘비디오흉강경’ 수술과 그 이후의 회복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행히 의료진께서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해 주셔서 비디오흉강경으로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상처는 작다지만 폐를 건드리는 일이고 림프절 전이까지 된 상태라 회복이 쉽지는 않았죠. 하지만 의료진의 처방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정기 검진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병원 문을 나설 때마다 느꼈던 그 긴장감... 그러다 마침내 ‘이제 졸업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지금도 방심하지 않고 식단과 운동을 철저히 챙기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Q. 치료비와 생활비 등 경제적인 현실도 큰 벽이었을 텐데, ‘산재 보상’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우리 같은 건설 현장 노동자나 주물공들은 서류라면 질색부터 하거든요. ‘산재가 되겠어?’ 싶은 마음에 포기하는 분들이 태반일 겁니다. 저 역시 그랬지만, 노무사님을 만나 제 직업력을 입증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마신 유해 연기와 분진이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산재로 인정받는 순간, 제 지난날의 고단함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참 따뜻해졌습니다. 보상금 덕분에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호전 상태까지 이어지는 투병 생활을 버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선생님의 산재 승인을 이끌어낸 노무법인 폐의 정현일 노무사는 이번 사례에 대해 “주물 공정은 고온의 쇳물을 다루며 발생하는 금속 흄과 유해 가스, 모래가 타며 발생하는 결정형 유리규산 등 폐암 유발 물질에 상시 노출되는 환경입니다. 특히 건설업이나 일용직 현장에서 장기간 근무하신 분들은 본인의 질병이 작업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고 설명했다.
정노무사는 이어 “그러나 폐암 환자의 10~15% 정도는 직업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폐암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기 때문에 퇴직 후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인과 관계를 떠올리고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라며 “주물공 작업을 비롯해 제조·건설 등 유해환경에서 장기간 근무한 이력이 있다면 근무 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산재 여부를 판단해보아야 합니다.”라고 자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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