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됐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법 시행으로 기업은 물론 공공의 영역에서도 이슈가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원·하청 상생 교섭 절차 매뉴얼’, ‘해석 지침’ 등을 발표했지만 현장은 혼란스럽다. 특히 기업 인사 노무 담당자들의 고민이 깊다. 무언가 하긴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달라진 상황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의 3가지 주요 개정 내용에 따른 대응법을 고민해 보자.
◆넓어진 사용자 범위
첫 번째 변화는 ‘사용자’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이제는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아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자는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시행 첫날인 3월 10일 하청 노동조합 407곳이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교섭 요구를 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사람이 인사 노무 담당자다. “그분들은 우리 직원이 아닌데요”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으니까.
이를 협상 관점에서 보면 ‘당사자(Party)’가 늘어난 상황이다. 당사자가 늘어날수록 이해관계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예상치 못한 요구가 들어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힘들어지는 것, 맞다. 그 수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룰이 바뀌었다면 많은 당사자들과 협상할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인사 노무 담당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회사의 ‘새로운 당사자’가 누가 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와 도급 또는 위탁 계약을 맺고 있는 협력업체 목록을 정리하자. 그리고 각 업체에 대해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 우리 회사 소속인 담당자가 해당 업체 근로자에게 일상적인 작업 지시를 내리고 있는가. 둘째, 근무 시간, 작업 속도, 인원 배치 등 근로조건의 핵심 사항을 우리 회사가 결정하고 있는가. 셋째, 안전 기준이나 품질 기준을 우리가 정하고 하청이 따르는 구조인가.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그 관계는 단순한 도급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법적으로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는 관계라는 의미이고,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새로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즉 상대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 어떤 협력 업체가 갑자기 나타나서 교섭 요청을 하지 않을까 ‘막연한’ 두려움은 내려놓자. 오히려 선제적으로 다가가는 것도 방법이다.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은 상대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협력업체와 비공식적인 소통 채널을 만들어 보는 것도 방법이다. 거창한 공식 미팅이 아니어도 된다. 현장을 방문하고, 불편한 게 없는지 물어보고, 변화가 생기면 먼저 알려주는 것 정도도 충분하다. 이것이 관계 자산이 된다. 공식 교섭 요청이 왔을 때 이미 쌓인 관계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은 협상의 시작점 자체가 다름을 기억하자.
◆단체교섭 범위의 확대
두 번째는 단체교섭 범위의 확대다. 기존에 임금이나 근로시간 정도가 쟁의 대상이었는데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등 ‘근로자 지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동을 초래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도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됐다. 많은 기업들이 이 조항을 경영권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인다. 사업주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불만을 갖는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달라진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게 낫다.
이 변화의 핵심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다. 기업은 최대한 범위를 좁히려 할 것이고 노조는 가능한 한 넓게 가져가길 원한다. 이 간극을 맞추는 건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논란이 될 만한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경영상의 결정 때문에 ‘근로자의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그 과정에 참여시키라는 뜻이다. 그것이 ‘공정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이게 바로 ‘절차적 공정성’이다. 사람들은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했다고 느끼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결과가 괜찮더라도 과정이 일방적이고 불투명하면 저항이 생긴다.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처럼 결과 자체가 불리한 결정일수록 과정의 공정성이 더 중요하다.
사업적으로 결정이 다 난 뒤에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알리면 일방적이다. 비록 그게 ‘큰’ 변화가 아닐지라도 ‘통보’받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검토 단계에서 ‘이런 방향을 고민 중인데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좋을지 함께 논의하자’고 나오면? 파트너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절차를 거치는 게 필요하다.
오해하지 말자. 경영권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결정은 경영진이 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을 공유해 상대가 참여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꼭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설명’은 해야 한다. 왜 이 결정이 필요한지, 어떤 과정을 거쳐 이에 이르렀는지, 이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배려를 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자.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 설명이 불충분한 채로 결정을 통보하고 나서 반발이 생기면 그제야 뒤늦게 설명을 시작한다. 이미 감정이 쌓인 뒤의 설명은 절반의 효과도 내기 어렵다. 결정 ‘전’에 설명하고, 결정 ‘중’에도 설명하고, 결정 ‘후’에도 설명하자. 이 루틴이 단체교섭 대상이 확대된 환경에서 인사 노무 담당자가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다.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마지막 세 번째는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는 부분이다. 파업 등 노조의 활동으로 손해가 발생해도 원칙적으로 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 사용자인 기업 입장에선 큰 무기(?)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로 상대의 ‘비용’을 높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행동을 통제하려는 했는데 그 카드가 없어진 것이다.
유용하게 쓸 카드가 없어진 상황, 인사 노무 담당자는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협상학적으로 봤을 때 이 변화는 오히려 ‘기회’다. ‘대결’의 협상이 아닌 ‘관계’의 협상으로 전환할 수 있어서다. 나에게 ‘칼’이 들려 있을 땐 나도 모르게 싸우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발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기를 잃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많은 협상을 봐 왔지만 ‘강압적’ 태도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단기적으론 이긴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는 ‘복수’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게임의 룰이 바뀐 이럴 때일수록 어떻게 좋은 관계를 ‘미리’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소통 채널’ 만들기다. 사전 접수 창구, 현장 간담회, 익명 의견 수렴 등 어떤 형태든 좋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에게 ‘직접’ 말해도 된다는 신호를 조직이 보내고 있느냐다. 그리고 그중 한두 개라도 실제 변화로 이끌어 주는 모습을 보여주자. 이게 관계 협상을 이끌기 위한 방법이다.
노란봉투법이 바꾼 것은 법조문만이 아니다. 노무관리의 철학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 왔다는 신호다. 강압이 아닌 설득으로, 통보가 아닌 소통으로, 위협이 아닌 관계로 노무관리를 해야만 한다. 세 가지 어려운 숙제 앞에 선 인사 노무 담당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법률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다.
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조직갈등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