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심기 칼럼] 시장 만능 아니듯 큰 정부도 답 아니다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심기 칼럼] 시장 만능 아니듯 큰 정부도 답 아니다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올해는 자본주의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부론>이 출간된 지 250년이 되는 해다. 저자인 애덤 스미스는 흔히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의 사도로 여겨진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 효율과 정부 개입 최소화를 상징하는 경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스미스를 그렇게만 이해하면 절반만 읽은 셈이다. 그가 믿은 것은 방임이 아니라 질서였다.

    스미스는 시장의 효율을 신뢰했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의와 신뢰, 공정한 규칙이 서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는 <도덕감정론>에서 정의를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pillar)’이라고 불렀다. 정의가 무너지면 사회는 버티지 못한다는 경고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규칙이 공정하지 않고, 경쟁이 왜곡되며, 특권이 작동하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스미스는 특히 독점과 지대추구를 경계했다. 그는 토지 소유자가 “뿌리지 않고도 거두려 한다”고 지적했다. 생산과 혁신보다 특권적 지위와 희소성이 더 큰 보상을 가져가는 구조를 비판한 것이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시장 자체가 아니다. 시장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경쟁과 혁신을 약화시키는 구조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고,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고 한 말은 시장과 국가를 단순한 대립 구도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압축한다. 시장은 존중돼야 하지만, 왜곡된 규칙과 특권까지 자율의 이름으로 방치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문제의식이 가장 직접적으로 겨누는 곳이 부동산 시장이다. 이 대통령은 “망국적 부동산 공화국 정상화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당한 노력 없이 땅값 상승과 규제 차익이 손쉬운 보상을 주는 구조라는 인식에서다. 왜곡된 보상체계와 자산 불평등의 중심에 부동산이 놓여 있다는 현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투자자와 기업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규칙, 일반주주와 지배주주 간 균형, 자금 조달과 투자자 보호 사이의 질서가 핵심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에 대해 더 분명히 하자는 상법 개정안의 취지도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다만 경영 자율을 억누르거나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빌미가 되는 방식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신뢰 기반을 넓히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노란봉투법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노동 약자 보호라는 입법 취지는 선의(善意)다. 문제는 ‘사용자성’ 기준이다. 이를 얼마나 정교하고 예측 가능하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비정상적인 노사 관행을 바로잡는 규칙이 될 수도, 혼란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사용자성의 경계를 충분히 가다듬지 않은 채 교섭 질서부터 먼저 바꿔 놓았다는 데 있다. 전국 900여 개 사업장에서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 교섭을 요청하며 “진짜 사장 나와라”라는 요구가 확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각 경제 주체가 신뢰할 수 있는 규칙이 있느냐, 책임과 권한의 경계가 분명하냐는 것이다. 시장은 추상적 자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 규칙이 있어야 신뢰가 생기고, 자생력도 커진다.


    많은 것을 시장에 맡기는 ‘작은 정부’로는 현안을 해결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금융위기와 팬데믹,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충격과 인공지능(AI)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국가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정상화’를 향한 국가의 의지가 시장 질서를 압도하는 만능주의로 흐르는 경우다. 정부 역할은 심판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가 가격 결정과 자원 배분은 물론 투자와 고용, 구조조정 등 기업의 의사결정까지 대신하려고 들면 시장의 조정 능력은 떨어지고 정치 개입의 유혹은 커진다.

    스미스가 250년 전에 남긴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아무 데서나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정의와 공정, 합리적인 규칙이 있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토대를 마련하고, 복원력을 유지하는 데 있다. 정부와 시장은 상호 보완 관계다. 정부가 시장의 자리를 대신하는 순간, 정상화는 또 다른 왜곡이 된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