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고도 아버지를 살릴 생명수를 찾아 떠난 ‘바리데기’와 억울한 누명을 쓴 언니 장화를 따라 차가운 연못에 몸을 던진 ‘홍련’.
한국 고전설화 속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난 두 여성이 재판장에서 판사(바리데기)와 피고인(홍련)으로 만난다. 한(恨) 많은 이들의 이야기는 구슬픈 가락이 아닌, 강렬한 록 사운드로 터져 나온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재연 중인 한국 창작 뮤지컬 ‘홍련’은 바리데기 설화와 장화홍련전을 사회적 약자라는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최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본사에서 만난 ‘홍련’의 배시현 작가(오른쪽)와 박신애 작곡가(왼쪽)는 “바리데기는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캐릭터로, 홍련은 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기혐오에 빠진 가련한 인물로 재해석했다”고 소개했다.
배 작가는 현대 사회의 비극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찾았다. “왜 우리 사회는 누군가 죽고 나서야 문제를 인식할까”라는 질문이 출발이었다. 아동학대나 산업재해처럼 비극이 벌어진 뒤에야 주목받는 사회적 문제가 마치 죽어서야 사또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고전설화 속 원혼과 닮았다고 느꼈다.
“바리데기와 홍련은 남아선호 사상과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가정학대를 겪은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바리데기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딸이기도 하죠. 홍련도 새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던 언니를 지켜주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예요. 바리데기가 홍련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위로해주는 인물로 재해석하는 식으로 두 서사를 결합했습니다.” (배 작가)
‘홍련’의 무대는 망자의 한을 씻어내는 ‘씻김굿’을 연상시킨다. 박 작곡가는 “홍련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목청 높여 노래하는 록 장르를 선택했다”며 “한국적 정서를 담기 위해 국악적 선율을 작품 전반에 입혔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2022년 청년 뮤지컬 창작자를 지원하는 CJ문화재단의 스테이지업 프로그램에 최종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당시 경쟁률만 해도 31:1에 달했다. 2024년 초연 후 지난해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400석 미만 부문)을 받았다.
중국어 버전으로 광저우와 상하이 관객도 만났다. 배 작가는 “한국과 중국 관객이 같은 지점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자신을 귀하게 사랑하라’는 작품의 메시지는 결국 모두가 듣고 싶어하는 위로의 말”이라고 했다.
두 창작진은 이 작품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마음 속 묵은 상처를 영원한 상처로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공연은 오는 5월 17일까지.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