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성적표에 100억씩 '상납'…해외로 돈 줄줄 샌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엉터리 성적표에 100억씩 '상납'…해외로 돈 줄줄 샌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기후리스크 분석 플랫폼 의존도가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기후리스크는 기업의 전략과 재무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투자자의 의사결정에도 직결되는 ESG 공시의 핵심 지표지만, 이를 평가할 한국형 모델 아직 없기 때문이다.

    29일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자발적으로 ESG 공시를 하고 있는 기업(지난해 기준 225곳) 대다수가 주피터 인텔리전스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S&P글로벌 같은 해외 업체의 기후리스크 분석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플랫폼은 기업의 사업장, 물류거점 등 실물 자산의 업종·위치·가치 등 정보를 입력받아, 폭염 홍수 산불 같은 ‘물리적 리스크’와 탄소 규제 강화에 따른 ‘전환 리스크’를 시나리오별로 분석해 지표로 제시한다. 특정 지역에서 재해가 발생할 확률과 이에 따른 피해 규모, 탄소 규제로 인한 비용 증가 등을 정량적으로 산출하는 구조다.

    이를 위해 과거 기상 데이터, 지형 정보, 온실가스 배출 통계 등을 결합한 데이터베이스와, 시나리오별로 위험과 손실을 계산하는 분석 모델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국내에는 이런 리스크를 정교하게 산출할 데이터베이스와 분석 모델이 없다. 이 때문에 상당수 기업이 해외 플랫폼을 구독하고 있다. 문제는 해외 분석 모델이 국내 실정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한 기업의 기후공시 담당 관계자는 "국내 사업장에 관한 해외 플랫폼들의 데이터베이스와 모델링 기법이 매우 허술해 비용을 지불한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전 세계 모형을 다루는 해외 플랫폼은 각 나라의 기후리스크 방재 시설 등이 최신판으로 업데이트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근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 교수는 "해외 업체들이 제공하는 모델은 '전 세계 모형'이라서 블랙박스가 너무 많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플랫폼의 기후리스크 시나리오는 분석 범위가 최소 25km에서 최대 200km 단위로 설정돼 있어 한국처럼 좁고 복잡한 지형에 적용하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크다는 의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대학 및 연구기관들이 분석 단위를 1km로 쪼개는 '다운스케일링'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기업이 실무에서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기후리스크 수치를 도출하기에는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비용도 문제다. 대기업 A그룹사의 경우 기본료 3000만원과 사업장당 20~40만원의 추가 비용을 포함해 약 7000만원을 지출했으며, 국내외 100여개 사업장을 보유한 B사도 매번 5500만원 가량의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플랫폼의 평균 이용료를 5000만원(기본료 포함)으로 가정하면, 225개사가 ESG 공시에 넣을 기후리스크 지표를 얻기 위해 해외에 '상납'하는 비용이 연간 최대 110억원 가량에 달하는 셈이다. 2028년부터 자산 30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시행되는데, 향후 전체 상장사(지난해 기준 819개사)가 ESG 공시를 위해 해외 플랫폼을 이용할 경우 해외로 유출되는 비용은 매년 수백억 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내 기업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국가 기후리스크 분석 플랫폼'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부터 5년간 2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기업들이 영업비밀인 내부데이터를 외부 유출 없이 직접 입력해 분석할 수 있는 기술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실질적인 기후리스크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모형의 단순 분할이 아닌, 한국 특유의 위치·크기·인구 구조 함수를 반영한 한국형 데이터를 직접 넣은 '한국형 모형'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한 기후리스크 전문가는 "한국형 모델은 해안 인접 공장과 내륙 공장의 태풍 피해 차이, 고령 근로자 비중 같은 인구 구조적 특성까지 반영할 수 있어야 기업에 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