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사주 소각 대신 활용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3차 상법 개정안 시행 후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되자 중소·중견기업을 겨냥한 행동주의펀드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기업은 자사주를 소각하기보다 임직원 보상과 미래 투자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주가 부양보다 핵심 인재와 기술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정기 주총에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안건으로 상정한 중견·중소 상장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6일 시행된 개정 상법에 따르면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이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1년6개월 내 소각해야 한다. 임직원 보상, 신기술 도입, 인수합병(M&A) 등 예외적인 때만 자사주 보유가 허용된다.
19일 알테오젠 지분 5.05%를 보유한 2대주주 형인우 스마트앤그로스 대표는 블로그를 통해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 친화 전략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알테오젠 경영진은 자사주를 소각하기보다 임직원 보상과 경영상 활용에 쓰겠다고 밝혔다. 리가켐바이오 등 바이오 업체와 로봇 액추에이터 전문 기업 로보티즈 등도 RSU 도입을 중심으로 한 자사주 활용 방안을 주총 안건으로 올렸다.
반도체 검사 장비 업체 고영테크놀러지는 전체 발행주식의 3.9%에 해당하는 자사주 중 3분의 2가량을 RSU 재원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소각과 투자에 절반씩 쓰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한미반도체, HPSP, 주성엔지니어링 등 다른 반도체 장비 업체도 자사주 소각과 임직원 보상을 병행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16조원)와 SK㈜(5조1000억원) 등 주요 대기업은 보유 자사주 대부분을 소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투자·인재 유지하기도 벅차”
중소·중견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기보다 활용하는 방안에 눈을 돌린 것은 주가 부양보다 인재 확보와 연구개발(R&D)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한 로봇업체 대표는 “주가 부양 목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기보다 핵심 인재 확보에 활용하는 게 주주 가치에 더 도움이 된다”며 “당장 올해 먹고살 자금이 빠듯한 중소기업엔 자사주 소각은 사치”라고 말했다.업계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회사 지배구조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기업은 대부분 성장 과정에서 자본시장에서 투자받아 대주주 지분율이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알테오젠(20.4%), 로보티즈(24.2%) 등은 대주주 지분율이 30% 미만이다. 이들 기업은 미국 일본 등 주요국처럼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수단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사주를 활용한 임직원 성과 보상을 확대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RSU 지급은 회계상 비용으로 인식돼 회사 수익을 감소시킨다. 이사회에서 확정할 수 있는 배당 등 경영 사안과 달리 RSU는 주총에서 결정한다. RSU를 받은 임직원은 세금이 큰 부담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사주 소각은 투자와 인재 확보가 절실한 중소·중견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RSU는 세제 지원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일정 기간 재직하거나 특정 성과를 달성하면 회사가 무상으로 지급하는 주식.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과 달리 임직원이 별도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